매일신문

"야학서 못배운 설움 씻는다"

'야학(夜學)을 아십니까'

고학력 사회,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야학은 앨범 속에 끼워 둔 색바랜 흑백사진 처럼 사회의관심 저 편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배우지 못한 설움을 딛고 일어 서기 위해 야학을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 신일야학. 좁은 교실 2칸에 3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하루3시간 수업. 시장에서 온종일 손님들과 흥정에 시달린 사람, 공장에서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걸상에 앉은 사람 등등. 못 배운 한(恨)때문 인지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익히려는 이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중학교 과정인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30~50대 아주머니.지난해 9월 공부를 시작한 김모씨(45)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르고 답답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야학을 찾았다" 한다.

부부 학생도 있다. 이모씨(36)는 "우연히 구청 소식지에서 야학을 알게 돼 남편을 설득,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며 "야학에 다니면서부터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알게됐다"고 했다.

신일야학 1회 졸업생인 교감 김상하씨(42)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부제날이면 야학에서한문 수업을 한다. 김씨는 "야학이 잊혀지고 있어 안타깝지만 아직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있는 한 야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이 학교를 졸업한 11명의 학생 중 6명은 고교과정을 배우기 위해 동구야학, 새얼학교 등으로 진학했고 2명은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6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경산 우리학교. 이곳에는 주부들이 많은 다른 야학과 달리 직물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10대 학생들이 절반을 넘는다. 4, 5년 동안 이 학교에서공부하는 학생들도 5명. 집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객지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야학은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둥지'.

초교를 졸업한 뒤 생활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정모씨(21.여)는 2명의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지난 5년 동안 이 학교에서 공부한 끝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정씨는 야학에서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는 야학(대구경북지역 야학협의회소속)은 대구에만 6곳. 학교에 따라 3월, 9월에 신입생을 모집하지만 입학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야학의 교사들은 무료 봉사하는 대학생, 직장인들. 학과 수업 외에 풍물, 컴퓨터, 생활법률, 연극 등 교양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강좌를 마련한 야학도 있다.

야학의 졸업식은 언제나 울음 바다가 된다. 배우지 못한 설움이 가난 보다 훨씬 크기 때문일까. 〈金敎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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