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돌아본 청록파 3인 삶과 시세계

혜산 박두진씨가 지난 16일 타계함에 따라 한국 시문학사에 새 지평을 열었던 청록파 시대가 마감됐다.

그들의 교분은 어떠했고, 그 맥은 누가 잇고 있을까.

1946년에 '청록집'을 내 청록파로 불린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삶과 시세계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먼저, 태어난 해가 박두진과 박목월이 1916년으로 같다. 조지훈은 1920년으로 조금 늦으나이들 셋은 격의없는 지기지우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다. 이들이 세상을 뜬 해가 공교롭게8자로 끝나는 해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조지훈이 1968년에 먼저 세상을 떴고, 박목월은 10년 뒤인 1978년에 삶을 마쳤다. 그리고 이번에 박두진이 이들 곁으로 떠나갔다.이들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1939년 문단에 데뷔했다. 이들이 작품을 냈던 시문학지는 '문장'. 박두진은 '향현' '묘지송' 등을 발표했고, 박목월은 '길처럼' '가을 으스름'을 냈다. 조지훈은 유명한 '승무'와 '고풍의상'을 선보였다.

해방 이듬해 '청록집'을 같이 내기까지 이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다. 박두진이 일본청산학원을 다녔다면 조지훈은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을 나왔고, 박목월은 고향인 경주를지켰다. 박두진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고, 조지훈은 경북 영양 출신이다.

조지훈이 박목월과 만난 것은 해방 이전이었으나 박두진은 '청록집'을 내면서 그와 처음 대면했다. 이중 조지훈과 박목월의 만남은 문학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있다. 해방 전 조지훈이 경주로 내려가자 박목월은 경주역까지 나와 '조지훈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그를 따뜻히 마중했다. 그때의 만남에서 조지훈이 시 '완화삼'을 써주자 박목월은 '나그네'로화답해 끈적한 우애를 확인했다.

그들은 서울에서 같이 활동하면서도 강한 개성 속에 단단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자연과 생에 대한 초연한 정신은 하나였으나 작품경향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 박목월이 민요조의 정형시에 주력했다면 박두진과 조지훈은 정형시와 산문시를 겸했다. 또 박두진이 기독교정신에 충실했다면 박목월은 민요조의 전통가락에 깊은 애정을 보였고, 조지훈은불교의 선사상에 침잠했다.

이들은 해방 이후 교직에 몸담으면서 많은 제자들을 육성하며 시단의 살을 찌웠다. 박두진이 연세대를 중심으로 교편생활을 하며 정공채.유경환.마종기.강은교 등의 제자를 길러냈고,한양대에서 주로 후학을 양성한 박목월은 이중.이한구.이활용.허영자 등을 제자로 두었다. 반면 조지훈은 셋 가운데 최연소자이면서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 제자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가 고려대 교단에 섰던 때문인지 김종길.최동호 등 주로 고려대 출신의 인맥을 갖고있다.

청록파의 미망인이나 자녀 중 일부는 문학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으나 대부분은 사업 등 제갈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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