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중심가에서 승용차로 40분 정도가면 효령면 고곡리 '독점'마을이 나온다. '사창천'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이 마을 뒤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는 크고 작은 삼국시대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다. 군위고곡리고분군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직경 10여m, 높이가 2~5m종도 되는 봉토분(封土墳)50여기와 봉문이 깎여나가 뚜껑들과 벽면이 드러난 석실(石室), 석곽(石槨)등 삼국시대 무덤수백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장 큰 고분...원형 보존잘돼
이 유적은 문화재관리국에서 1977년 펴낸 "문화유적총람"이라는 책자와 지난해 같은 제목으로 펴낸 CD-ROM에도 소개되어 있다. CD-ROM에 소개된 군위지역의 1백57개 유적 중 유일한 고분군이었다. 또 같은 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펴낸 '군위군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에 소개된 고분 12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던 고분군이었다. 비록 최근까지 도굴되고 있었지만 군위의 대표적인 고분군이었고 문헌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군위의 고대사 규명에 매우중요한 유적이었다.
군위에는 화산산성 등 국방(國防)에 관한 유적은 특히 많이 남아있지만 당시인들의 사회문화상을총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고분이나 생활유적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해 드물게 발견되는 편이었다.그래서 이 고분군을 더욱 중시하였고, 다행히 고분 대부분이 국유지 속에 분포되어 있어 다른 어느 고분군 보다 잘 보존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유적의 관리자인 군위군은 이 곳을 개발업자에 팔고 공장을 짓게 해 유적을 파괴 망실시키는 결과를 초래케 했다.참을수 없는 분노와 비통함
이처럼 우리의 역사를 능멸하고 국법질서를 어긴 범법행위는 주민의 제보로 당국에 신고되었다.두달이 지나서야 언론에 보도되었고, 즉시 현장을 찾은 필자에게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비통함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못난 후손들은 중장비로 1천5백년 풍상에도 잘 견뎌왔던 선조들의 유택(幽宅)들을 짓밟고 파헤쳐버려 흔적마저 잃게 하였고, 저 세상에서 먹을 양식을 담아 두었던 항아리들을 산산히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형태만 겨우 남은 무덤 몇기는 소나기만내려도 무너져 버릴 듯 애처롭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당국의 사후조치와 학계의 태도는 여느때와 마찬가지였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전문가 한사람 보내지 않고 형질변경 중지 지시와 변경시 사전 발굴조사 허가를 받아라는공문만 보냈다고 한다. 법규에 따라 잘 조사하고 있는 현장에는 뻔질나게 찾아 훈수 두시는 높은분들, 문화재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남의 일 인양 팔짱만 끼고 있었다.평소 자신이 직접 관여한 일 외에는 무심한 이들을 대신해 '문화재지키기 시민모임'에서만 성명서를 통해 신속한 대책수립을 촉구했을 뿐이다.
역사의 현장으로 거듭나길...
더 이상 방치하여 영원히 멸실시키지 말고 철저하고도 신속한 조사를 통해 그나마 남아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찾아낸 후 잘 정비하여 군위의 대표 고분군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는 시민모임의성명서 한 장이 유일한 외침이었다. 양도영〈영남대 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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