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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콜총리의 명예스런 퇴장

16년간이나 장기집권한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거산'을 방불케 하는 인물이다. 그의 거대한풍모는 만나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며 압도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거대함은 몸집이 아니라 그가이룩해 낸 업적과 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누구나 불가능할 것으로 보던 독일 통일을 전쟁 없이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아무도 낙관하지 않는 유럽 통합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정을 보였다. 52세로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라 연속 4기를 연임하면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19년 집권에 도전, '최장수 재상'에의 꿈을 키워온 그였다.

그러나 27일 독일 총선의 준엄한 민의의 심판 앞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서게 됐다. 독일 통일이라는 최대 업적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염증을 해소하고 치유하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30년대 이래 최악의 실업률은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실업병의 대명사를 '영국병'에서 '독일병'으로 고쳐 부르게 했으며, 그 병은 결국 그의 패배를 부르게 된 셈이다. 독일 국민은 변화를택했다. 정체된 제도와 이념으로는 21세기를 대비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탁월한 친화력, 과감한 결단력으로 연출한 업적들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좌파 언론의 무차별 난타에도 능수능란하게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수완도 결코 폄하될 수 없으리라 본다. 투박하고 소탈한 이미지도 친근감이 가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남겼다.콜 총리의 퇴장을 계기로 우리와 독일간의 관계는 별다른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그러나 유럽 정치의 이데올로기 지향에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또한 콜의 '명예로운 퇴장'은 정부 수립 후 한번도 예외가 없었던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명예스럽지 못한 퇴장'을 떠올리게 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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