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소련 우주기술 베일 벗었다

우주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적 탐사라는 표면적 이유 외에 냉전체제가 낳은 군사적 목적이도사리고 있음을 알수 있다. 미국과 구소련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우주개발은 극비리에 진행돼 일반인들의 정보접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무너진뒤, 구소련의 우주관련기술이 속속 공개돼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점차 베일을 벗고 있는 자료들 가운데 상당수는 구소련의 가공할만한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각국의 과학자들에게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왔던 계획마저 다시 검토하도록 자극하고 있다.미국의 과학전문잡지 파퓰러 사이언스 는 10월호에서 구소련 비밀 우주선의 사진과 기술을 공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비행에 성공했으며 일부는 서류로만 존재한다.▨달정복 경쟁

지난 60년대 미국과 소련간에 치열하게 벌어진 달을 향한 경주는 68년과 69년 아폴로 우주선이달에 착륙하면서 미국의 우위가 인정됐지만 실제 착륙을 제외하면 한발 빨랐던 건 소련이었다.소련기술자들은 미국보다 먼저 비밀리에 달표면에 착륙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존트 라는 무인시험비행체가 그것. 2인탑승 비행체의 직전단계인 존트는 67년과 68년 소련이 로켓과 우주선 발사에서 너무 많은 실패를 겪는 바람에 발사되지 못했다.

소련은 또 달궤도에 진입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2인승 궤도비행체 L-1 과 1인승 소형 달착륙선L-3 를 개발했으나 우주궤도에 올리는데는 실패했다.

▨우주왕복선

소련의 우주에 대한 야심은 우주정거장 미르 와 우주왕복선 뷰란 을 제작중이던 80년대 중반최고조에 달했다. 이보다 몇단계를 더 내다본 기술진은 미르보다 훨씬 큰 우주정거장까지 비행할수 있도록 8인승 우주왕복선 짜리야 개발에 착수했다.

짜리야의 외벽타일은 현재 NASA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했고 착륙때 완충로켓도 중심부에서 테두리부분으로 옮겨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우주인과 화물을 싣는 캡슐은 5천3백㎏으로 무게와 크기가 아폴로 우주선의 2배나 됐다. 이 우주왕복선 계획은 85년 시작됐으나 89년 소련경제의붕괴로 취소됐으며 거대한 우주정거장 계획도 무산됐다.

▨우주에서 보내온 사진들

70년대 들어 소련은 수년간 우주궤도에 머무를 20t 규모의 살류트 우주정거장을 쏘아보냈으며한번에 수개월씩 여기에 머무를 승무원을 보내기도 했다. 소련이 철저히 감춰온 군사용 살류트모델은 만들어진지 20여년이 지난 97년에야 공개됐다.

살류트의 절단면도를 보면 미국의 군사시설을 관측할 수 있는 거대한 스파이 카메라가 장착돼있고 뒤쪽 끝에 필름을 공급하는 투입장치가 있다. 우주인들이 비행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지구로사진이 전송됐다. 몇해전 이 필름 중 한통이 무려 4만2천5백달러에 경매되기도 했는데 러시아측은 최근 이 카메라와 캡슐의 구매자를 찾고 있다.

▨대위성무기

40년전 외국의 위성이 머리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소련은 위성 파괴 무기를 제작하는 작업에들어갔다. 63년 세계최초로 대위성무기인 무게 1천3백㎏ 규모 우주선 폴리어트 1호 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물론 군사적 목적은 숨겨졌다.

68년부터 83년 사이 소련은 일련의 킬러 위성 들을 시험발사했다. 폴리어트 비행체를 전쟁목적으로 개조한 것으로 최근에야 사진이 공개됐다.

▨스타워즈

80년대 초기를 지나며 소련은 자체적인 스타워즈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주공간에 공격용 무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87년5월 발사된 폴리어스 는 길이 37m, 직경 4.1m 크기의 검은 원통모양으로 좌우로 펼수 있는 목표물 추적장치와 대위성 레이저무기로 알려진 스키프-DM 이란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초기 소련 지도자들에게 승인받아 추진된 이 계획은 야심차게 진행됐으나 우주궤도를 향해 발사된 폴리어스가 태평양에 떨어져 중단되고 말았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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