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리즈(1)-침몰 대구경제 고부가로 살리자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만이 살길

지금 대구경제는 암울하다. 섬유산업 지원계획을 필두로 벤처지원, 중소기업지원 등 각종 정책이제시되고 있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IMF체제가 끝난 후라도 재기가 가능할지 의문스런 상황이다.

지역경제에도 새로운 아젠다 설정이 시급하다. 바로 기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첨단산업을유치하는 일이다. 21세기의 대구를 살맛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역의 주력업종과 유치가능한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대구지역 정보통신 분야 제1호 벤처기업인 도원텔레콤 대구공장.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부사원6명이 연 50억~60억원어치의 통신장비를 만들어낸다. 같은 건물 지하에서는 지난달 중순부터 10여명의 여사원들이 PCS 중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달말까지 한달여만에 20억원의 매출을 올릴전망.

지난 94년 설립이후 5년만인 올해 1백20억원, 내년 3백억원의 매출을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눈여겨봐야할 점은 해마다 매출액의 15%에 이르는 연구개발 투자로 20건이 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사실이다.

대구경제의 침몰원인은 도원텔레콤의 사례를 뒤집어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력업종인 섬유산업의 경우 업체수가 3천7백여개에 이르지만 전문연구소는 고작 2개. 연구개발 투자는 96년경우 매출액의 0.03%에 불과, 여타 제조업의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섬유산업의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수천억원의 산업합리화 자금이 투입됐지만 업체의덩치만 키워놓았을 뿐 연구개발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기술개발 없는 외형확대는 경기가 나빠질경우 대처능력을 일시에 상실하게 된다. 나아가 주위에서 괜찮은 기술을 개발하기만 하면 유사제품을 만들어 업계 스스로 연구의욕을 죽여버렸다.

기계·금속업종 역시 국제표준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채 갈수록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첨단산업 지원시스템은 그저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의 창업을 돕는 수준일 뿐 언제 어떻게 관련업체들을 유치해 지역의 신종산업으로 정착시키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다.

그 결과 대구경제는 '껍데기'만 남을 위기에 놓였다. 1인당 총생산은 92년이래 전국 최하위. 96년기준 1천명당 사업체수 2.9개로 7대도시 가운데 6위.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역시 3천8백50만원으로 6위에 머물고 있다. 후진적인 영세업체가 지역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반증이다.더 심각한 것은 향후 성장잠재력 역시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급전문인력을꾸준히 배출하지만 이들이 되돌아올 토양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내륙거점 도시로서 물류의 중심지가 된다는 계획도 언제쯤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국가적 IMF 상황 때문에 국제공항, 항만연결 고속도로 등 SOC 분야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기존 섬유와 기계·금속산업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미래형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일이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야말로 지역경제 회생을 위한 발상의 전환과 이를 뒷받침할 민·관·산·학 모두의 의식개혁이 절실한 때다. 고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헛된 논의보다 실질적인 연구와 노력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기업이라는 ㅅ전자는 지난해 5만8천여명의 종업원이 18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1천2백50억원의 순이익(1인당 순이익 2백15만원)을 남겼다. 미국의 유명 게임제작사 미드웨이는 4백명이 지난해 5백88억원의 순이익(1인당 순이익 1억4천7백만원)을 남겼다고 한다. 순이익 2백15만원과 1억4천7백만원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순이익 규모의 차이에 지역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있다.

지역기업인들도 이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기술개발 의지도 없이 이율이 낮은 공공자금만 기대하거나, 자기 돈을 자기 회사에 빌려주고 이자나 챙기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섬유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밀라노 프로젝트'에 첫걸음부터 딴죽을 거는 일은 절대 말아야 한다.지방정부도 공허한 계획만 던져놓고 '법과 제도상의 한계' 뒤로 숨어버리는 무책임에서 벗어나야한다. 성과를 자랑하기 위한 대규모 단지조성이나 생색내기식 자금지원보다는 신용보증, 담보, 투자자모집 등 실질적으로 기업을 도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에 기업이 없고 노동자가 없으면 지방공무원도 월급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시민들도 지역경제 회생을 위해 벤처기업 투자 등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서울, 경기 등지에서는 이미 투자조합 결성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IMF시대는 어쩌면 지역경제 체질개선의 기회일 수 있다. 이제라도 고부가가치에 승부를 걸어야한다. 대구의 미래는 바로 첨단화에 달려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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