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선산 출신 박녹주(朴綠珠.1905~1979)는 동편제(東便制) 창법의 국보적 존재로 흥보가 명창이자 판소리계에 우먼파워를 심은 인간문화재이다.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면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판소리계에서 유독 경상도 사투리를 고집한 박녹주가 남긴 음반은 명물로 꼽히며, 40년대에 김소희.박귀희 등과 함께 결성한 여성국악동호회는남성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판소리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12세 되던 1916년, 소리에서 신선의 경지에 들었다고 '가신'(歌神)으로 불린 대단한 명창 박기홍(朴基洪)의 문하에 들어가 하루 24시간 가운데 먹고 자는 시간을 뺀 20시간 이상을 꼬박 소리닦기에 쏟아부었고, 두달만에 '춘향가' 전바탕과 심청가 일부를 익혔다.
14세때 소리를 가르치는데 별로 관심이 없던 노대가 김창환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전수받은 흥보가(興甫歌)중 '제비노정기'는 그가 가장 애창하던 대목이다. 박녹주가 설움을 받아가며 김창환의 소리를 전수한 덕에 대부분 소리꾼들이 박녹주의 제비노정기를 이어받아서 부를 수 있게 된것이다.
이어서 대구 강창호 문하에 들어간 박녹주는 심청가 초입부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데'까지,수궁가 중 '고고천변'을 두달동안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의 손에 끌려 달성공원앞 달성권번에 들어가 기생수업을 받았다. 달성권번에서 행수기생 앵모의 양딸로 들어가 소리.춤.시조에서 두각을 드러낸 박녹주는 대구에서 김초향 다음가는 소녀명창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18세 되던 1922년 서울로 올라온 박녹주는 송만갑에게 단가 '진국명산'과 춘향가 중 '사랑가'로부터 '십장가'까지 배웠고, 1928년에는 조선극장에서 열린 팔도명창대회가 끝나고 찾아온 인촌 김성수의 부친 김경중과 소설가 김유정 두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다.
김경중은 박녹주가 1929년 송만갑의 수제자인 김정문에게 '흥보가'의 '제비 후리러 나가는데'까지배울 수 있도록 주선, 오늘날까지 동편제 흥보가가 온전히 전승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이 가운데 '박타령'과 '비단 나오는데'는 박녹주가 즐겨 부른 대목이고, 심청가 전바탕도 김정문으로부터 전수받았다. 박녹주의 흥보가는 김소희를 통해 소리판의 맥을 잇고 있다.'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은 박녹주의 뛰어난 예술성에 공감, 1937년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되어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어린 나이에 사회 저명인사가 된 박녹주가대학생 신분의 김유정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열두살때부터 소리길을 닦아온 박녹주는 20대에 벌써 국창급 대명창들의 고제를 두루 이어받아여류명창으로 명성을 떨치며, 1928년에는 콜럼비아 레코드사에 심청가를 취입했고, 연이어 빅터.태평양 레코드사에서 판소리 네바탕을 모두 출반하여 인기가 치솟았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 결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박녹주는 1935년도의 춘향극 공연(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정정렬 연출)에서 이동백(운봉 영장 역) 송만갑(곡성 원님 역) 김창룡(변사또 역) 정남희(이도령 역) 오태석(방자 역)과 함께 춘향역을 맡아 열연, 장안의 화제를 낳았다.소리로 전국을 누빈 박녹주는 40년대 후반에 국악계가 남창 편의 위주로 운영되자 김소희 박귀희등을 이끌며 여성국악동호회를 창립했으며, 5명창(송만갑.김창환.이동백.정정렬.김창룡)이 타계한후 여류 국창으로 군림했으며, 남자 명창들의 맥이 거의 끊어져버린 인간문화재 시대에는 김여란과 함께 쇠퇴하는 소리판을 굳건히 지켜냈다.
대구의 국악인 박기환씨는 "박녹주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국악인이었다"며 "국립국악원을 만들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려준다.
여자로서 다소 거친 목을 가졌으나 단단하고 무게있는 목소리로 현대 판소리를 이끌어온 박녹주는 비록 대구.경북 무대 보다는 중앙무대에서 각광받았으나 타계 일년전인 1978년 고향 선산에서열린 고별공연에서 백발가를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경상도 악센트와 사투리의 아니리가 독특한 맛을 주면서도 차분하고 속이 깊었던 박녹주를 기려경북 선산에 기념비가 들어서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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