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용센터 직업상담원의 애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 대구서부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원 정은영씨(30)에게 50대주부가 찾아왔다.

왜소한 몸집에 화장기 하나없는 창백한 얼굴. 한눈에 보아도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 주부는 "공공근로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왔다"며 집에서 찍은 듯한 사진 두장을 내밀었다. 증명사진찍을 돈이 없어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그냥 가져왔다는 말과 함께.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는주부에게 정씨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차근히 물었다.

남편의 실직으로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살림살이,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레 병으로 쓰러져 다음날 수술을 기다리는 남편, 그리고 하나뿐인 장애인 아들. 주부는 입원비라도 마련해야겠기에 다급한 마음에 공공근로를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북받치는 설움을 참을 수 없었던지 말을 마친 주부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고 정씨도함께 울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찾아온 주부에게 정씨는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용돈을 줄여 마련했으니아저씨 수술비에 보태쓰세요"라는 말을 듣고 주부는 감격해마지 않았다. 정씨의 도움 덕분이었을까. 남편은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지금은 약물치료 중이다.

며칠 전 주부가 고마움을 담아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단 몇분 동안의 만남이지만한 여자의 일생에 진정 가슴 아파한 은영씨의 마음은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 낯선 타향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 슬픔과 일상에 지친 나의 모습을 그날만큼 초라하게 비쳐본 적이 없었는데. 제가 받았던 고마운 손길 꼭 다른 사람에게 갚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계명대 심리학과를 나와 상담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친 정씨는 지난 4월부터 직업상담원으로 일해왔다. 지금껏 일해온 소감을 묻는 질문에 "삶이 고달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한번은 전화를 받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는 한 남자 때문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최근 실직했다는 그 사람은 삶을 포기하려한다며 마지막으로 원망이나 실컷 하려는 심정에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차분히 상대방을 설득했다. 결국 1시간이 넘게 통화한 끝에 마음을 돌려놓았고 고용안정센터로 나오도록 했다. 그리고 이튿날 찾아온 40대의 그 남자에게 일자리도 구해줬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동관서까지 찾아오신 분들 중에는 자격지심이 들어 직업상담원들과의상담 도중 언성을 높이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차분히 끝까지 말을 들어주면 오히려 상대방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데 위안받고 더욱 적극적으로 상담에 참여하죠. 취업하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본인이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면 반드시 일자리는 나오게 마련입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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