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노라마 20세기문화(9)-영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1918년부터 25년까지 독일 바이마르 공화기의 주류를 이뤘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ExpressionismFilm)당시 암울한 현실에 봉착한 독일인들의 자포자기한 심리상태를 그대로 드러냈다.제1차 세계대전 패전후 독일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 제국주의의 꿈이 무산되자 기성 가치관은무너지고, 극좌와 극우의 충돌로 인한 사회적 혼란, 패전에 따른 경제적 파국이 독일 전역을 몰아친다. 독일인들은 이 혼란한 시기를 잊고 싶어했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이상적인 상태)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양의 건축물, 광기 어린 성격을 가진 주인공, 가물거리는 가스등이내걸린 어두운 밤거리, 촛불에 일렁이는 실내. 이러한 미장센(장면화)을 통해 공포, 증오, 사랑, 불안 등의 인간의 내적 심리상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로 1913년 폴 베게너가 제작한 '골렘'(Der Golem·20년에 재제작됨)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1919년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r Dr. Caligari)에서부터 본격적인 조류가 형성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영화는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1830년경. 최면술사인 칼리가리박사는 케사르라는 몽유병자를 커다란 상자에 넣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최면술을 구경시킨다. 박사는 케사르에게 미래를 예견하게하고 예언이 맞게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계속되는 살인사건에프란시스와 경찰은 칼리가리박사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쫓는다. 영화는 그가 정신병원의 원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만 오히려 프란시스가 정신병자일 수 있다는 열린구조로 끝난다.이 영화는 원래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로 칭송받는 프리츠 랑이 만들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거미'(Die Spinnen) 연작에 몰두하느라 비네가 만들었다.

기하학적 구조의 무대장치, 거칠게 왜곡된 세팅, 과장된 연기와 어둡고 칙칙한 조명, 그리고 정신병적인 뒤틀린 내용으로 가장 충실한 표현주의 영화로 손꼽힌다.

이후 프리츠 랑의 '운명'(21년), '닥터 마부제'(22년), 무루나우의 '노스페라투'(22년)와 '마지막 웃음'(24년), 파브스트의 '쓸쓸한 거리'(25년), 듀퐁의 '버라이어티'(25년)등이 뒤를 이었다. 표현주의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현실 복제 영화'들과 판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표현주의 기법을 농축시킨 최고의 걸작은 프리츠 랑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27년)이다.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일개 조립공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시종 음울한 분위기로 그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표현주의 영화의 기괴함과 특수효과에 바탕을 둔 SF적 미장센은 20년대에만들어진 영화임을 의심케 한다.

표현주의 양식은 이후 미국 영화계가 '드라큘라''프랑켄슈타인'등을 제작할 때 시각적 이미지를강조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어두운 색조를 곁들인 1940년대 범죄 누아르 영화도 이 방식을 차용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60년),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63년),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60년), 그리고 오손 웰즈의 '심판'(62년)에 이르기까지 현대 영화사에서큰 흐름을 제시한 사조로 남아 있다.

〈金重基기자〉

◆표현주의

'표현주의'라는 말은 미술평론가 바르덴(H.Warden)이 창간한 예술잡지 '슈투름'(Sturm)을 통해보급되기 시작했다. 미장센으로서의 세트, 즉 현실감을 벗어난 무대 디자인과 연극처럼 과장된 연기를 특징으로 한다. 표현주의적 장치를 도입한 영화를 '실내극 영화'(Kammer Spiel Film)라고부른다.

◆로베르트 비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뿌리를 다진 로베르트 비네(1881-1938).

1881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출생. 1912년 코미디영화감독으로 데뷔. 베를린의 레싱극장에서 배우, 작가, 연출가로 활동. '아우 피로몬과 형 리스레'(16년)를 발표하면서 제작자들에게 인정받게되지만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이후 'Genuine'(20년) 'I.N.R.I.'(23년)등을 만들지만 큰 관심을 끌지못함.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었던 독일영화 전성기의 풍운아적 인물. 1938년 7월 17일 유작'Ultimatum'을 남기고 파리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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