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통합교과형-고전논술
◆문제
다음 제시문은 고골리의 소설 '외투'의 한 부분이다. 이 글에서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비인간적 행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인성(人性)과 사회 조직의 관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술하라.
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으므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그 고관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중략) 그의 시스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엄격성이었다. "엄격히, 엄격히, 모든 것을 엄격히!"라는 게 그의입버릇이었는데, 이렇게 뇌까리면서 언제나 상대방의 얼굴을 지극히 거드름 떠는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었다. (중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찾아간 고관이란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가 찾아간 것은 공교롭게도 가장 좋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인 고관에겐 때맞춰 찾아와 주었다 해도 과언이아니었다. 고관은 마침 자기 서재에 앉아서 몇 해만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올라온 죽마고우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참이었다.
"대체 뭣하는 사람이야?"하고 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느 관청의 관리라고 합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음, 그래! 그럼 지금은 바쁘니 기다리라고 해"하고 고관은 말했다. 고관의 이 말은 전혀 거짓말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는 벌써 오래 전에 할 얘기를 다 해 버리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관리를 기다리게 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퇴직한 친구에게, 자기를 찾아오는 관리들이 문간방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내화제도 다 떨어져, 입권련 한 대를 다 피운 다음, 그는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보고용 서류를 들고 문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
"아 참, 저기 무슨 관리인가 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들어와도 좋다고 일러 주게"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온순한 모습과 그의 낡아빠진 제복을 보자, 고관은 갑자기 그에게 돌아앉으며 토막토막 끊어진 것 같은 딱딱한 어조로 대뜸 이렇게 물었다.
"용건이 무엇이오?"
그것은 칙임관이라는 관등을 받고 현재의 직위에 올라앉기 1주일 전부터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 거울을 앞에 놓고 일부러 연습한 어조였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겁을 집어먹고 있었으므로,돌아가지 않는 혀끝을 억지로 움직여, "실은, 그..." 소리를 연발해 가면서 새로 맞춰 입은 외투를야만적인 수법에 의해 강탈당했으니 자기를 위해 경찰국장이나 그 밖의 적당한 인사에게 몇 자적어 보내서 외투를 찾아 주도록 힘을 써 주십사 해서 왔노라고 말했다.
"당신은 일의 순서라는 걸 모르고 있소? 어딜 찾아온 거요? 모든 사무가 어떠한 순서를 밟아서진행되는지 알고 있을 게 아니오! 이러한 문제는 우선 창구에 탄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법이오. 그렇게 하면 서류가 계장, 과장을 거쳐 비서관한테 넘겨지고, 그 다음에 비서관이 나한테 가져오게되어 있단 말이오"
"그렇지만, 각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자기의 온몸에서 진땀이 흐른다고 느끼며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기력을 쥐어짜다시피 하여 말했다.
"제가 외람되게 각하께 직접 부탁드리는 것도, 실은 그...비서관이란 대체로 믿을 것이 못 되는 사람들이라..."
"도대체 어디서 그 따위의 정신을 집어넣어 가지고 왔소? 어디서 그 따위 사상을 배워 왔느냐 말이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엔 웃어른과 상관에 대한 지극히 불손한 사상이 만연되어 있어 큰일이라니까!"
그는 사뭇 발을 구르며 아카키예비치가 아니더라도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언성을 높여 호통을 쳤다.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 더 이상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하여 밖으로 끌려나갔다. 고관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데 대해 만족했다. 자기의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을 기절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자기 친구가 이 점을 어떻게보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곁눈으로 눈치를 살폈다. 자기 친구 역시 어리둥절하여 어떤 공포감을느끼고 있는 눈치인 것을 보고는 마음이 흡족했다.
어떻게 계단을 내려와 어떻게 한길로 나왔는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아무 것도 기억에 없었다.이튿날 그는 무섭게 열이 높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의사가 왔을 때는 맥을 짚어 보았을 뿐, 의사는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병자가 인술의 도움도 받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찜질이라도 해 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의사는 앞으로 기껏해야 하루하고 한 나절밖엔 안 남았다고 선언 하고 나서 하숙집 안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뭐 기다려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곧 소나무관을 하나 주문하도록 하십시오.이런 사람한텐 참나무관은 과분할 테니까요"
이런 말들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귀에 들렸는지 어떤지, 설사 들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충격적인 효과를 그에게 주었는지, 그것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줄곧 혼수 상태에 빠져 헛소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이리하여 마침내 가련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숨을거두고 말았다.
〈유의 사항〉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500자 내외로 쓸 것.
2.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수험생 답안
박지영(정화여고)
이 글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억울하게 강탈당한 외투를 찾기 위하여 고관을 찾아갔으나, 고관의거만하고 불성실한 태도에 충격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아마도 고관은 그의 행동 때문에 주인공이 죽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에 나타난 그가 한 인간을 죽게 할 만큼 악한 심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는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직책도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인공에게 대하는 태도는 상식을 넘어선 잔인하고 포악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한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여길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이러한 인성이 발현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인간의 인성은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후천적인 환경인 사회적 지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따라서 고관의 비인간적 행위는 선천적인 인성의 문제로만 취급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그것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데 이는 곧 관료제라는 사회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고관은 칙임관 자리에 있으면서 사회에서 만연된 관습에 따라 행동한다. 관료제란 원래 상하급 관계의 규칙을 세워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보듯 그는 지나치게 자신의 위치를 권위적으로 내세우려 하고 형식적인 면에치중한다. 출퇴근때 부하들로 하여금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게 한다든지, '엄격히'를 입버릇처럼하고 다닌다든지 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그러한 행동은 관료제의 효율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형식화되고 비인간화 된 모습이다.
주인공에게 가해진 비인간적인 행위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고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절차를 요구한다. 그는 자신의 일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경직된 관료주의에 안주함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한다. 이는 그의 인성이 그러해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 사회를 지배한 관료제가 그의 인성을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팽배한 관료적 사회 체제가 비인간성을 초래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있다.
한 인간의 인성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변화된다. 그것이 나쁜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의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 조직이 잘못되었을 때 그로 인해 인성조차 변화될 수 있으며단지 피해 당사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격적 파멸에 이른 가해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분 석
이 문제는 현대의 조직 사회가 개인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도록 출제되었다. 제시된소설은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단편 '외투' 중 일부다. 그는 관료제의 부패를 비판한 작품을 주로썼다. 관료제란 관리의 지배라는 뜻이며 처음에는 정부의 관료에게만 사용되었지만 점차로 대규모 조직 일반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집단 규범도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고, 구성원의 개인적 행동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현대 조직 사회와 결합되면서 개인의 인성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오랜 절약 끝에 간신히 새 외투를 장만하지만 노상 강도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는 외투를찾아달라고 하소연하지만 경찰이나 관청의 관리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결국 그는 죽고 만다.
관료제 사회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획일적 가치하에 엄격한 질서와 권위를앞세우는 사회이다. 특히 본 소설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절차상의 질서를 어겼다고 호통을 치고 친구에게 자신의 위선적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이유없이 주인공을 문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사회는 개인의 욕망이나 특성은 무시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제도도 만들고 규범을 만들었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서 사회도 중요하지만 인간 개체가없는 사회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 사회 구성원이 없는 사회의 관리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바람직한 사회는 수직적 권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백성이 상호적 관계로 존재해야 한다.
참고 예시문은 관료제 사회가 인성에 미치는 잘못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진술했다. 문제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의 글은 전체가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서론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본론의 첫째 단락에서 관료제 사회의 특성, 둘째 단락에서 관료제 사회가 인성에 미치는 영향을 주어진 소설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잘 되었고 문장력도 좋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서론이 본론의 내용에 비해 좀 긴 편이다.
밑줄친 부분은 좀더 간략하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본론에서 관료제 사회의 특성이좀더 체계적으로 분석되었으면 더 설득력을 높였을 것이다.
이 철 호 〈정화여고 교사(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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