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쇠도끼를 찾습니다

옛날 일본 해군의 한 고위인사가 제독 분류법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성장(聖將), 명장(名將), 지장(知將), 투장(鬪將), 용장(勇將), 해장(海將), 범장(凡將)이 그것이다. 꼭 이 서열대로는 아니지만앞쪽일수록 평가수준이 높은 호칭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범장도 없는 우리 軍

일본에서는 러시아함대 격멸작전으로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東鄕)제독을 성장(聖將)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또 2차대전 때 진주만 기습을 총지휘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山本)제독을 명장의 그릇으로 평가한다.

이런 지도자들이 없어선지 요즘 우리 군의 모습이 말이 아니다.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간첩선쫓아보내기, 미사일 오발사건에 이르기까지 안보망의 구멍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술 더떠북한과의 내통사건까지 벌이는 마당이니 소소한 조명탄, 수류탄사고 쯤이야 안중에도 들어오지않는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선들 새지 않을까'-바깥살림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IMF의생지옥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안 무기조달사업을 한다는 것이 한방에 수천억, 수조원씩을 게눈 감추듯 날려보내고 있으니 안타깝다 못해 통탄스럽기까지하다.

*정체성 상실한 군상(群像)

어느 군사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우리 군은 몇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한다. 즉 장교집단의 전문성 결여, 하사관집단의 역할 상실, 사병집단의 책임감 부족이 그것이다.무기조달사업에서 국제적 호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장교집단의 전문성 결여가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세계무기시장의 생리도 모르는 반풍수를 구매창구로 하고 있으니 최첨단 지식을 갖춘무기상인들에게 농락당하지 않을수 없다는것.

'떠돌이 보직'을 지향하는 군 인사정책이 이런 폐단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장교와 병을 연결하며 군의 실무적 중추를 이루는 하사관집단의 자질부족은 '북한동무들과도 놀아보세'라는 자기상실극을 만들어낸 원인이 됐다.

기강을 존중하는 일본군대도 아니고 책임과 개인생활을 구분하는 미국군대도 아닌 사병집단 또한문제의 한 구성원이다.

이런 판국에 군 인사질서마저 일하는 사람 따로, 상받고 승진하는 사람 따로라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상도 믿을 수 없고 벌도 빠져나갈 수 있는 조직이라면 무사안일은 필연적이다. 상하급자들의 묵계 아래 사고가 터지면 덮어버리고 재임중 그저 일없이 넘어가려는 어물쩍주의가 오늘과 같은 군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같은 군의 병폐는 군사정권의 과보호 속에서 체질화 되고 심층화 되었다는 해석을 곁들일수 있다.

문민정부 들면서 군에 대한 보호막이 차츰 벗겨지면서 이런 폐단들이 서서히 노출되고 이제는 실상을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군의 존재이유인 주적개념(主敵槪念)이 희미해지고반공 방첩 보안시스템 어딘가에 바이러스까지 침투, 국가보안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북한과의내통사건이 장기간 노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런 증세를 설명하고도 남는다.*고집 가진 인물 아쉬워

이야기를 되돌리면 우리 군에는 군의 구조적 문제들을 소탕할 수 있는 유능한 지휘자들이 없다는말이 된다. 성장이나 명장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우리 군의 토양이 너무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장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지장이 좋긴 하지만 교묘한 자질을 살릴 수 있는 바탕이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장은 또 시류와 영합, 정장(政將)화 될 위험까지 안고 있다.그러면 용장은 어떨까.

그 정도면 우리 군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소신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우직함만있었더라도 우리 군이 이런 상황에까지 왔겠나 하는 의문을 갖게한다. 물론 이번 사태는 군 이상의 곳에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만을 떼어 생각하면 금도끼, 은도끼도 아닌 쇠도끼 즉, 용장의 덕목이 더 한층 아쉬워진다는 이야기다.

(사족이지만 군 바깥 세상도 똑같은 문제에 빠져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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