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서글픈 교실 풍경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쑥은 구부러지며 자란다. 줄기도, 대궁도 구부러져 쑥대가 휘어진다. 그러나삼밭의 쑥은 곧게 자라고 쑥대도 곧다.

■논두렁 된 삼밭

삼밭의 쑥이 곧게 자란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 현실에 비춰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쑥의 굽는성질도 삼의 곧은 성질을 본받으면 곧게 된다'는 것은 '비뚤어진 사람도 올바른 사람을 만나면바르게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교육 현장은 '삼밭'에 비유하기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이즈음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학교의 교실 풍경은 삭막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도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을 잇따라 저질러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삼밭과 같아야 할 교실(교육 현장)은 이제 논두렁.밭두렁과 같은 곳이 돼버렸으며, 그 비극적 광경도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라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얼마 전 여중생이 여교사를 때려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어 초등학생의 아버지가 담임 여교사를폭행하더니, 최근에는 학생을 체벌한 여고 교사가 제자의 112 신고로 학교 내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체벌-교권-왕따

학생들 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집단 따돌림을 받는 이른바 '왕따' 현상은 지난 9월까지만도 4천여건에 이르러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지난달 4일 '왕따'로 시달리던 한 여고생이 목을 매 자살했고, 지난 10월 한 초등학생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또 지난달에는 '왕따'로 정신병을 앓게 된 초등학교 여학생의 가족들이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같은달 서울지법은 피해자에게 위자료 등 1억5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경제난국이후 결식학생이 10만명을 넘어선 현실에서 무료급식 학생들을 '거지'니 '해골'이니 하며 놀리고따돌려 아예 굶는 학생이 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같이 교권이 멍들고 '스승의 상'은 허물어졌으며, 학생들에게도 교실이 공포의 도가니에 다름아니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그 골이 깊을대로 깊어졌다고 봐야 한다. 교육 현장이 어쩌다 이 지경에이르렀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교사가 제자의 신고로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경찰에 끌려간다는 것은 우리 교육 현장의최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의 지침으로 학생 체벌이 전면 금지된 상태이므로 교사에게도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교권을 뒤흔들고, 경찰이 교권을 침해했다는 데더 큰 문제가 있다.

학교 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신뢰감에서 출발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공동으로 노력할 때큰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즈음의 사건들은 그런 공감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우리 사회의 병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도 말해주었다. 만약 앞으로도 이대로 간다면 '교육의 실종'마저 가져오지 않을지 걱정된다.

교육 현장의 이같은 현상에 대한 책임은 학교에는 물론 가정과 사회,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봐야한다. 가정에서는 청소년들을 지나치게 보호함으로써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그 결과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희미해져 사도가 허물어지는가 하면,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 집단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이 짙어졌다.

사회도 마찬가지의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배금주의와 집단이기주의의 만연과 팽배로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스승의 상'까지 땅에 떨어뜨렸다. 학교나 교사도 촌지 사건, 불법과외 사건 등으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감을 잃고, 존경심을 스스로 희석시키기도 했다.

■교육은 마지막 보루

교육은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교권과 학교가 흔들리면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 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으면 사회의 기반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사도와 교권, 믿음직하고 따스한 교실의 회복만이 교육의 정상화를 가져다준다.

교사들은 '스승의 상'을 되찾을 수 있는 책임의식을 가다듬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버리고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는 풍토가 회복될 때 학교는 '삼밭'과 같은 배움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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