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한해가 다가는데… 한 해가 다갔다. 세기말이다 하여 혼돈스러운 현실에 절망감을 갖기도 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에대한 기대로 근거없는 희망에 들뜨기도 하면서 어느덧 1998년이 다갔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는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잊고 있지나 않은지 주변을 한번 살펴 볼 일이다.
박영희 시인은 대구시단에서 아직은 낯선 이름이다. 80년대 중반에 등단해 2권의 시집을 낸 시인임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그 까닭을 살피는 일은 불행한 한국 근·현대사를다시 읽는 일이 된다. 그는 1992년 북한을 다녀온 일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형을 언도받고 7년 복역하다가 지난 8·15특사로 가석방되었다. '사람의 문학' 겨울호에 발표한 '접견을 다녀오면'은 이 때의 경험을 시로 쓴 것이다.
◇복역을 경험으로 쓴 詩
"접견을 다녀오면/ 마음씨가 스무살 처녀 살결 같은 함경도 최선생님이 꼭 물어오십니다/ 누가왔시요/ 오마니?/ 누이?/ 어드렇게 생겼시요/ 거기도 철조망이 쳐졌시요/ 유리가 굉장히 두껍다는데 맞아요/ 이야기는 얼마나 했시요/ 십 분?/ 이십 분?/ 낸들 가봤시야 알지요/ 누가 찾아올 사람이나 있어야 가보디요/ 덴장/ 삼십년을 살고시리 코 앞에 거기도 못가봤시니…"(전문)이 시는 나의 입을 통해서 비전향 장기수 최선생님의 말을 전하는 이중 화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최선생님은 30년 옥살이를 하고 있지만 면회 오는 이가 없어 접견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있다. 30년이라는 기간도 그렇지만 면회 한번을 하지 못해 접견장에 철조망이 쳐진 줄 알고있는 장기수가 엄연히 있는 곳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땅이다.
◇3백여 양심수가 아직 감옥에
현재 비전향 장기수를 포함해 3백명 이상의 양심수가 비인간적인 처우 속에서 싸우고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아흔 아홉명이 행복하더라도 한 명이 부당하게 억압받는 곳은 결코 성숙된 사회가 아니다. 이 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될, 가령 통인이라든가 사상의 자유보장 등과 같은 과제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詩語로 드러낸 역사성
대구시인협회가 펴낸 연간작품집 '1998 대구의 詩'에 실린 이하석의 '백무동' 역시 강렬한 역사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도시에서 불길로 일렁이며 광대놀이 하다 죽어/ 이 곳에서 흰 눈을 덮어쓰고 있는" 도진용이라는 대구출신의 민중광대에 대한 추모시 이면서 아울러 지리산에서 죽어간 빨치산들의 죽음에 대한 헌시이다. 이 시 마지막 연의 "겨울 백무동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려/ 그것이 두 죽음을 받아 안고/ 너그러이 함께 빛나는 것을 본다"는 구절 가운데서 '두 죽음'이란 바로 역사에 헌신하다가 일찍 죽어간 젊은 광대와 빨치산을 지칭하는 시인의 가장 따뜻한 언어로 읽히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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