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영화 어제와 오늘-6.25 격동기

김지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한때 대구를 방문해 6.25 피란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친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때 한국 영화인들의 자존심을 드높인 곳이 바로 이곳 대구로 항상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구는 한국영화 여명기에 우리 영화 발전을 위해 앞장서 주었습니다"

6.25전쟁으로 피란민들이 대구의 교회와 학교, 관공서 곳곳에 넘쳐날때 극장가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전쟁으로 우리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온통 외국영화 일색이었으나, 전쟁으로지친 피란민들과 가족을 잃은 실향민들이 영화를 보며 아픈 가슴을 달랬다.

당시 2군 사령부 정훈부에서는 대구공화당(현 대구시민회관 위치)을 육군중앙극장으로 사용, 관객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미군부대에서 빌린 16mm 외국영화가 우리말로 번역돼 변사들이유창한 말솜씨로 관객을 웃고 울렸다.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대구, 부산, 진해 등지의 군부대에 분산돼 '국방뉴스' '리버티뉴스'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전시활동을 했다. 대구에서는 김승호, 김진규, 최무룡 등 유명배우들이 내려왔는데당시 국제여관(현 명동극장 인근)이 연예인들의 집합장소로 애용됐다고 권용수 만경관 사장은 전했다.

사회가 차츰 안정되면서 대구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51년 손린 감독의 '내가 넘는 38선'(손전, 손태호 주연),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추봉, 손억 주연) 등이 그것이다.

한때 영화현장에 몸담았던 김대한 예총 대구지회 사무처장은 "당시 자유극장 뒷골목에 있던 목로주점 '카스바'가 대구영화인들이 즐겨찾는 만남의 장소였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기획, 제작된 작품이 바로 민경식 감독의 데뷔작 '태양의 거리'. 자유극장에서 간판그림을 그리던 민씨는 당시 이후근 자유극장 사장의 제작으로 1952년 동촌유원지, 대구역, 동성로, 교동시장 등지에서 '태양의거리'를 촬영했다.

이 작품은 학교 훈육주임선생이 6.25전쟁으로 어둠속에 헤매는 청소년들을 선도, 밝은 거리로 이끌어간다는 내용으로 민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대구출신 영화기획자 변종근씨(당시 만경관에서 간판그림을 그린 서양화가 변종화씨의 형)가 기획을, 심재홍씨가 촬영을 맡아 전택이, 박암, 민혜경씨 등이 출연했다.

민감독은 이외에도 '구원의 애정' '내가 없는 그날까지' '눈물젖은 두만강' '경상도 사나이' 등의작품을 남겼다. 그의 밑에서 간판그림을 배운 제자 이규현씨가 현재 대구극장에서 미술부장으로활동하고 있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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