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홈토피아-"작은 질서를 소중히"부창부수

"지금 우리 아파트 동 앞에 주차가 잘못돼 있습니다"

금방 타고 나간다고 자동차를 아무데나 세워두거나 하찮은 일이라고 공공질서를 소홀히 하는 현장이 발견되면 대구시 수성구 시지천마타운 관리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바로 이 아파트 이호석씨(48·하양여고 교사)의 전화이다.

"아유, 그렇게 별난 사람하고 어떻게 이웃하고 살아? 너무 피곤하겠어"하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시라. 적어도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특히 한 통로에 사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 집처럼만 해라"고 옹호론을 펴는 걸 보니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내세우는 오지랖 넓은 스타일이 아니다.

이웃에게 인정받는 비결은? 결코 비결이 있는게 아니다. 다소 보수적이긴 하지만 자유사회의 원칙을 지키며 가정과 지역·직장에서 가야할 길을 변함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신뢰를 만들고 사랑을 쌓아간다. '역사바로세우기'에 이어 '제2건국론'까지 거창한 구호들이 난무하지만 정작반만년 한민족의 생명력을 이어줄 근본은 '질서'에서 나온다고 여기는 철저한 믿음을 이씨 가족은 결코 잊은 적이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뿐이라는 성과주의에다 남(사회)이야 어떻게 되든, 나(내 가족)부터 살고 볼 일이라는 왜곡된 이기주의의 거품이 빠지지 않는한 21세기형 선진 시민사회를 정착시키기는 요원한 일"이라는 이씨의 아내 김경희씨(44·한빛은행 대구지점 피크타이머)는 "질서를 지키는사람이 바보처럼 불이익을 당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득을 보는 일이 없어져야한다"고 믿고 있다.

남편과 부창부수로 '권리에 앞서 의무부터 다하기'를 지론으로 삼는 김씨는 신혼초 전입신고를며칠 늦게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몽땅 날린 여파로 맨땅에 헤딩하기를 10여년, 마흔을 훌쩍 넘기고서야 내집을 갖기까지 고생도 많았지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살고 싶다"를 노래한다. 무늬만남편 예찬론자가 아니라 속속들이 남편을 존경한다. 까닭은 이씨의 성실하고 섬세한 가장(家長)역할 덕분이다.

비록 남편 이씨가 젊은 남편들처럼 날씨만 좋으면 빨래를 떠올리는 '앞치마형 남편'도, 돈을 넉넉히 벌지도 않지만 결혼 이후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반듯한 모습들이 가족들에게 물질로 잴 수 없는 만족감과 신뢰감을 만들었다.

웨딩마치(81년)를 올린 이래 지금까지 매일 메모를 하면서 생활을 되돌아보고, 규칙적인 생활로책에서 손을 떼지않는 이씨는 "사람의 됨됨이를 만드는 가정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돼도 지나치지않다"며 부모의 거울인 자녀 교육의 70%는 아버지손에게 달려있다고 할 정도로 아빠의 '무한대역할론'을 주장한다. 과외 대신 매일 '아빠의 숙제'를 내주고 점검하면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덕분에 딸 정민이(여고1년)와 아들 동건이(중3)는 어른이 드시기전에 절대 음식에 손대지 않고,한달 용돈 3만원을 큰 돈으로 소중하게 여기며, 버스간에서는 한자리에 조용히 서 있는다."물건을 구입할 일이 있으면 몇개월동안 돈을 모아서 현금으로 사지 한번도 할부구매나 충동구매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아내 김씨는 "경제적으로 힘들때 봉양하지 못해 외국 시누이댁에 머무는시어머니를 한시바삐 모셔와야겠다"며 아무리 IMF로 어려워도 부부가 힘을 합치며 이 세상에 겁나는 일 없고 자식 버릴 일 없지 않느냐고 덧붙인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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