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성 미술상 제정 신중을"

대구시와 미협대구지회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이인성(李仁星) 미술상'제정에 대해 미술계 일각에서 이인성이 친일성향의 인물임을 주장, 반대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인성의 뛰어난 예술성은 인정하지만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나 민족의식 함양노력 보다는 조선총독부가 정책적으로 창설한 조선미술전람회(鮮展)를 주요배경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예술적전력때문에 이인성의 이름을 딴 미술상이 제정돼서는 안된다는것.

이인성 미술상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인 미술평론가 권원순씨는 "이인성의 천재성과 예술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적 색채의 작가그룹인 조선수채화협회 같은 데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줄곧 조선총독부가 창립한 조선미술전람회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친일작가"라고 말했다.이인성은 1929년 제8회 선전에 '그늘'이라는 수채화가 입선한뒤 제9회, 11회 입선, 12, 13회 특선,14회땐 '경주의 산곡에서'가 창덕궁상 수상, 15회 특선, 16, 17, 18, 19, 22회때는 매회 1, 2작품이잇따라 추천을 받았다.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이인성을 두고 '선전의 기린아'니, '선전이 이인성을 위해 생겨났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화려한 입상경력을 자랑했다.

그는 또한 1932, 33, 34, 35, 38년도엔 전일본수채화전, 일본 광풍회전, 제전(帝展) 등 일본의 각종공모전에서 입선, 준특선 등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현 경북여고)의 일본인 교장 시라카미 쥬키지의 물심양면의도움을 받았고, 한때는 조선총독부 총독이 자기집 거실을 이인성에게 아틀리에로 사용토록 했다는 뒷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인성은 이같은 선전과 제전에서의 활약때문에 해방후엔 친일파로 화단에서 따돌림을 받아 기행과 주벽이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한다.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의 이름으로 상을 제정할 때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후진들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으로 해야할것 "이라며 "더구나 대구시가 지역의 대표적인 미술상의 하나로 제정하려는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일행각때문에 춘원 이광수의 이름을 딴 춘원문학상이 없듯이 아무리 예술성이 뛰어나도 친일파를 기리는 예술상 제정은지양돼야한다는 여론이다.

대구시는 이인성 미술상 제정을 위해 올해 1천200만원의 예산을 편성, 회화·조각·설치부문에서지역미술발전에 공헌한 작가들을 매년 1명씩 선정, 창작지원금과 전시회 개최 등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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