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홈토피아-가족애로 이뤄낸 재기의 기적

"별 말씀은 않지만 참 가정적인 아버지와 늘 변함없는 어머니에게서 절망을 딛고 다시 세상에 일어설 용기를 얻었습니다"

알루미늄 새시 기술자였던 장종욱(31.대구시 동구 신서동)씨는 지난 92년 12월 큰 교통사고를 겪고 하반신이 마비된 중도장애자이다. 그런 그가 말없이 주고받는 가족애와 희생 덕분에 재활의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다.

장씨가 열흘간의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대여섯번이나 수술을 거듭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아버지 장정채(55)씨는 아들치다꺼거리를 위해 직장을 버렸고, 종애(29) 종미(26) 두 여동생은 어머니(최순자.54)를 대신해서 가게도 보고 살림을 도맡았다.

"3대 독자 아들이 저지경인데 다시는 내 인생에 웃고 살일은 없는 줄 알았어요. 다 살았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무조건 아들이 낫기만 기대했다. 그런데 수술을 몇번이나 해도 척추를 살리지 못해 앉아서 5분을 채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아들을 보는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어버리기를 바랐던적도 있다.

"진작에 죽었으면 나을 걸. 그랬다면 가슴에는 묻어도 괴롭기는 덜했을테지"

어머니는 병원비를 대기위해 집을 팔아 변두리로 옮기고, 다음에는 가게를 팔고 재산을 차례로없애나갔다. 돈때문에 병원에서 퇴원, 침치료를 시작하면서 종욱씨는 재활운동을 시작했다."병원에서는 평생 누워 지내야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운동하면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운동을 시작하기전 온가족이 절대 넘어져도 도와주지 말기로 약속했다. 아들이 보조기를 끼고 손바닥만한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가는데 근 한시간이나 걸리고 몇번씩 '꽈당, 꽈당' 넘어져도 엄마는 물론 여동생조차 눈썹하나 까딱안했다. 남들이 보면 매몰차다고 할 정도로 돌보지않는 가운데하루 10시간 이상씩 운동을 강행했다.

"너무 가슴아팠지만 그래야 오빠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2년이나 휴학한 종미(경북대 독어독문학과 졸업예정)씨는 오빠가 그런 고생끝에 휠체어 생활을할 수 있게 되자 날듯이 기뻤다. 휠체어에 탄 종욱씨는 장애자회관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 장애자 친구들을 사귀었다.

"시설에 가면 죽을때까지 밥은 먹여줘요. 하지만 우리는 내 손으로 일해서 돈도 벌고, 친구들과함께 작업할 집도 마련하고 싶었어요"

허름한 반양옥 한쪽 귀퉁이에 나있는 반지하공간을 어머니.아버지가 6개월에 걸쳐 일일이 손으로파내고 작은 방을 넣어주었다.

아들 종욱이와 그 친구들을 위한 재활공간을 손수 마련한 셈이다. 침을 놓던 김종태(56.대구시 달서구 감삼동)씨의 영향으로 영세한 종욱씨가 세례명을 따라 '야곱의 집'(053-963-8391)으로 명명한 이곳에서는 장애자 10여명이 정부보조 한푼없이 묵주.성화도장등 성물(聖物)을 만들어 전국으로 팔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아들의 소원대로 장애자친구들이 어두컴컴한 지하공간을 벗어나 양지바른 곳에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일하는 틈틈이 운동도 할 수 있으리라 믿는 부모들은 "우리 내외, 서로 눈물 안보이기로 약속하고 살았는데 아들이 어려움을 잘 헤쳐주어 너무 고맙다"며 그간의 아픔을 묻는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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