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7월 첫 보궐선거가 과거와 똑같은 '돈선거''과열선거'로 치러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국민정부가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 다음 보궐선거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때는 두번째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안양 시흥 구로 재.보궐선거를 보면서는 '더 이상 잘못 꿸 단추도 없다'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동 특위위원'건으로 현재도 여전히 정치쟁점이 되고 있는 재.보궐선거가 집권여당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는 실로 엄중하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국민정부'하에서 관권선거 및 금권선거 시비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절망어린 탄식을 갖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거기간중 선거관리위원회가 적발한 14건의 위법사항중 자민련이 4건, 한나라당이 1건인데 반하여 국민회의는 9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집권여당은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지역특위위원을 2만명이나 임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집권여당은 항변할 지 모르겠다.
즉 과거에는 선관위가 정부여당의 들러리였으나 국민정부 하에서는 선관위의 독립성이 커졌기 때문에 선관위 적발 건수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금권선거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러한 정당화로 우회해 가기에는 관권선거 및 금권선거의 소지가 너무 크다는 심증을 국민들은 가지고 있다. 돈선거가 단순히 여당만의 문제점은 아니지만, 돈선거를 척결하는 열쇠를 여당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집권여당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선거문화에 관한 한, 나는 국민정부가 이전 정부를 정확히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수차례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은 새로운 선거문화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선거의 정치적 의미를 '과잉 규정'하여 놓고 승리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양상으로 대응하였다. 야당 시절 불이익을 반추하면서, 이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야당과 대국적으로 깨끗한 정치를 만들려는 노력은 정말 불가능한가.
유감스럽게도 현재까지 그러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결과는 신통치 않지만, 초기 김영삼정부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강한 집착 아래 통합선거법 제정에 앞장섰던 것에 비해서도 훨씬 못미친다. 나는 집권여당이 개혁적 이니 셔티브를 가지려고 하지 않고 '수의 다수'로 정국을 주도하려는 발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집권여당에 주는 더욱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는 현재와 같은 선거문화가 계속된다면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이 극단화되어 정치 자체의 존립근거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고의 메시지는 야당에게도, 자민련에게도 정확히 적용되는 메시지이다. 현재의 지역주의적 구도에서 정당들의 중요한 당선전략은 지역적 고정표에 더하여 약간의 추가 득표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지역주의적 구도에 적당히 기대는 고정표 활용전략에 한계가 왔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호남표나 영남표가 이전 만큼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투표 유인을 갖지 못함으로써 당선자의 대표성을 위협할 정도로 낮은 투표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고정표 해체현상 속에서 우리는 국민들의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념적.정책적 경쟁의 냄새도 맡을 수 없는 현재의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36.2%에 이르는 낮은 투표율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국토의 3분의 2에서 '이념이고 정책이고 나발이고' 전혀 소용이 없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적 무관심이 극단화되어 정치의 실종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제 집권여당과 야당은 흘러간 멜로디를 반복해서 듣는 국민들의 실망을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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