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맞아죽을 각오로...

◈◈무식은 편리하지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방송국 드라마에서 시어머니인 김혜자는 똑똑한 며느리 최진실을 보고 점잖게 한마디 한다. "너 무식해서 좋은 것이 무엇인 줄 아니. 그 핑계로 하고 싶은 말 맘 놓고 하는 거다"라고.

이같은 무지의 편리함이나 무지의 멋과 여유같은 것은 농경사회는 물론 산업화 사회까지는 근사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 지식사회로 이행된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땀의 대가가 찬양 받던 시대가 아니라 지식의 대가가 칭송 받는 시대로 바뀐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9년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땀의 노동을 주로 하고있는 고졸의 실질임금은 79년 13.75달러에서 97년은 11.8달러로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시대는 바야흐로 자본주의에서 지본(知本)주의로 바뀌면서 지식이 새로운 경쟁무기로 등장하고 지식경영이니 지식위주 조직이니 온통 지식이 판을 휩쓸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기업의 가치마저 지적가치로 따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GE가 1천850억달러로 1위(노스웨스턴대학 분석). 한국의 1위는 삼성전자이나 6억달러 정도밖에 안된다.

◈◈후진사회인 TK지역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을 쓴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씨가 생각난다. 정말 맞아 죽을 각오로 한마디 하고 싶다.

"대구·경북은 밑바닥 사회에 머물러 있고 또 무식하다"고. 물론 서울과 대비한 상대적인 평가이지만.대부분의 대구·경북(TK)인들은 서울 친구를 만나면 그들이 교양이나 상식에서 다소 앞서 있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TK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서울 친구가 똑똑해서도 아니다. 다만 속한 사회가 달랐기 때문이다. TK의 고교생이 굳이 서울의 대학으로 가려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TK의 모임에 가면 대개 "누구와 술 몇병 먹었다"하는 술이야기나 "누구와 화투를 쳐 얼마를 땄다"하는 화투이야기나 "몇번 홀 그린이 어렵다"느니 하는 골프이야기 등 주로 생활잡변이야기에다 시간적으로는 모두 과거이야기들이다. 이렇게 대화의 시간을 과거에 묻어버린다면 미래는 어떻게 보장 받을 것인가.

그러나 무지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무지의 보호본능'이다. 조금이라도 논리를 펼치면 단박에 돌아오는 것은 "오냐 니 잘 났다"라는 비아냥이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튀면 이번에는 "사람 날린다"느니 "건방지다"느니 하며 악평을 한다.

대화에서 영어라도 한번 튀어나오면 "혀 뿌러지겠다"느니 "영어가 고생한다"느니 하는 비꼬임 뿐이다. 이렇게 대구·경북은 남의 능력이나 창의성은 뭉개버리는 후진국형의 밑바닥사회(Bottom Society)인 것이다.

그러나 서울은 그렇지 않다. 남의 장점이나 우수성을 인정하고 또 받아들이며 생산적인 토론문화도 있다. 선진국 정도는 안돼도 그래도 제법 재능과 능력이 올바르게 평가되는 절정기 사회(peak society)이다.

대구의 고등학생 학력은 전국 최고수준인데 어른의 수준은 서울 보다 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보화 대비 수준에서 TK는 서울의 반밖에 안되고 부산이나 인천보다도 뒤처져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 조사)

◈◈TK민에 고함

나폴레옹이 쳐들어 왔을 때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 고함'이라는 강연으로 독일부흥의 싹을 키웠다. 그런데 TK에는 지식사회가 쳐들어 왔는데도 '피히테'가 없다.

한때 대구시 가장 번화가에 책방이 즐비했고 전국에서 교수가 가장 존경받는 '교육의 도시' '학문의 도시' 대구가 천민문화의 도시로 변해가도 아무도 경고하지 않고 있다.

이런 후진적 사회구조를 가지고 TK는 낙후할 수밖에 없으며 또 지식사회에 동참할 수도 없다. 인재도 나올 수 없다. 키우지 않는 데 어떻게 클 것인가. 사실 지식격차나 사회발전도 등을 엄밀히 따지자면 서울과 대구는 오십보 백보이다.

그러나 오십보 백보와는 분명 오십보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폐쇄성이나 상극문화를 버리고 개방적이고 상생적인 새로운 지식문화를 창조하자. 그래서 대구·경북의 사회의 격을 한 단계 높이자. 서울은 뭐 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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