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도전하려고 높디 높은 건물을 짓던 인간이 결국 저주를 받고마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높이'를 향한 열망은 태고적부터 간직해온 인간 본능이었다.
종교적 상징성, 전략적 필요에 의해 건물을 쌓아 올렸던 이전과 달리 현대에 들어서는 보다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고층 건물이 등장했다. 좁고 비싼 땅덩어리를 좀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본능을 앞지른 것이다.
80년대 이후 올림픽 건설 붐과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이런 '욕심'에 부합하는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최고(最高)의 건물은 하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하면 조금 머뭇거리던 사람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란 질문앞엔 주저없이'63빌딩'이라는 대답을 쏟아낸다.
그 만큼 '대한생명 63빌딩'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가 높다. 한강 다리를 지날 때면 석양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건물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건축물)중 하나.
지난 85년 7월 개관, 연면적 5만1천500평의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하는 이 빌딩이 갖는 건축사적 의미는 초고층 건물이 갖는 의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돼야 할 건축에 있어 초고층 건물은 당대 건축 기술의 총합체이자 국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63빌딩은 10만t에 달하는 건물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하 45m까지 파들어가 암반 위에 최대 직경 4.5m의 받침대를 243개나 박아 지반을 다졌고 건물이 좌·우 30cm씩 휘어져 7도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태양의 각도와 기온에 따라 은색, 노랑색, 황금색, 적색으로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며 63빌딩의 외관을 장식하는 총 1만3천516장의 황금색 이중 반사유리도 아름다움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성인 남성이 의자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 초속 40m의 강풍과 기압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
63빌딩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도 무시할 수 없다. '빌딩'하면 촘촘히 박혀있는 사무실만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부터 수족관, 영화관, 식당, 예식장, 헬스클럽, 서점까지 한 건물내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시설을 갖춤으로써 빌딩을 단순한 업무공간에서 '수직도시'로 승격시켰다. 고궁·사적 등 과거지향적 서울 관광에서 기후와 관계없이 미래관광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미국의 최고층 건물 시어즈빌딩을 설계한 설계사무소 'SOM'이 기본설계를 맡았고, 미국·일본의 학자 및 기술진이 참여, 순수 국내기술로 지어지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경북대 최무혁(건축학과)교수는 "63빌딩은 우리나라 초고층 빌딩의 효시이자 각종 설계·공사에서 획기적 발전의 계기가 돼 이후 우리 건설 업체가 해외 초고층 빌딩 건설사업 발주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63빌딩과 관련된 재미있는 비밀 한가지. 63빌딩은 몇 층일까. 흔히 63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60층. 63이란 숫자는 지하 3층까지 포함한 것으로 초고층 빌딩으로의 이미지를 최대화하려는 홍보 전략이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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