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서 음악요법으로 정신병 환자를 치료한다거나 동·식물을 길러 낸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어째서 지금껏 정신 분석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이 음악 자체에 대해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았을까 늘 의아했다. 미문한 탓인가? 내겐 이런 현상이 마치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에 몸을 맡긴 것처럼 여겨져서 참 흥미로웠다.
음악을 듣는 많은 순간을 내 아픈 삶에 대한 치료책으로 삼아 온 스스로를 돌아 보면, 또한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자가치료용 음악 가운데 어째서 유독 첼로연주가 그리 많은지, 취향이 뚜렷한 편인 내가 하필 첼로만은 연주자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좋아하는지-.
장한나의 연주를 기다리면서도 역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꽤나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녀의 로코코 변주곡이나 엘레지가, 최소한 차 안에서의 짜증스러움을 다른 빛깔의 심리상태로 치환해주었던 기억이 내겐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녀의 실제 연주는 쉽게 몰입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연주회 내내 느껴졌던 그 막연한 결핍감은 급기야 연주를 흠잡는 일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말았다. 슈타커나 로스트로포비치, 혹은 카잘스나 조영창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정작 장한나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연주회이면서도 그녀만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없어서 유쾌하지가 않았다. 그녀가 좀 피곤해 보이는 반면 반주자 다리아의 피아노 연주가 압도적으로 도드라져 더 그랬다. 그녀는 아직 젊은 연주자니 드뷔시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근대 음악가에 비중을 두는 것이야 당연하고 또 두곡의 연주가 다 무난했기에 그거야 문제될 것 없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소나타는 여지껏 들어왔던 많은 연주에 비해 확실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연주 자체에 하등 보탬이 안돼 보이는 연주자의 심한 숨소리도 내겐 꽤나 거슬렸다.
그나마 마음을 풀어 준 건 우리나라 첼리스트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어떤 부드러운 힘이었다. 천성적인 그 여유와 천진함에 무한한 색채가 더해지기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 그녀의 나이가 아직 충분히 젊다는 위안이 없었다면 아마도 힘이 빠졌을 것이다. 그녀의 연주에 우리 삶의 생채기를 온전히 치유할 힘이 실릴 그 어느 날, 나도 음악이라는 미검증 의료행위에 숨겨진 비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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