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벤처기업들이 투자마트를 통해 수십억원을 유치하는 동안 지역 벤처들은 정부 및 지자체, 벤처캐피털로부터 수천만원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역 벤처기업이 민간자본을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이다.지역 벤처기업이 정부의 공적자금이나 창투사, 기술신보 등에서 돈을 받으려면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서류뭉치를 준비해야 한다. 창업보육기관들이 이같은 서류작업을 도와주고 있지만 기업들로선 적잖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심사에 통과해 자금지원을 받게 되면 천만다행이다. 인터넷 컨텐츠를 개발하는 한 벤처기업 사장의 말이다. "창업 후 1년 남짓 됐을 때 신용보증기관을 통해 운영자금 1억원을 신청해 심사에 통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원이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신용카드 대금이 2개월 연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6개월을 더 기다려 자금 지원을 받았는데 제때에 돈이 나왔더라면 2천만~3천만원의 추가지출은 없었을 것이다"
수도권 벤처들은 입맛에 맞는 투자자를 고를 만큼 풍족한 자금 환경을 지닌데 비해 지역 벤처는 투자자를 만나는 일조차 하늘의 별따기다. 이유가 뭘까.
대구창업투자 신장철 이사는 "지역 벤처기업은 상품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투자 대비 고수익이 눈에 보이는 벤처기업들이 즐비한데 굳이 지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토박이 스타벤처가 없다는 점도 기관투자가나 엔젤 등 민간투자가를 유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자금난에 허덕이다보니 결국 블랙 엔젤의 유혹에 넘어간다.
'블랙 엔젤(Black Angel)'은 벤처기업에 돈을 대는 일종의 사채업자다. 투자액에 비해 과도한 스톡옵션을 요구하거나 매출액 중 상당부분을 수익으로 챙겨간다. 블랙 엔젤에 걸려든 벤처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사채업자에게 대부분 뺏긴다. 지역에서도 3~4개 업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블랙 엔젤의 투자 유혹에 걸려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벤처보육기관의 횡포도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 기관에 입주한 업체는 공간, 행정, 자금 등의 지원을 쉽게 받는 이른바 '귀족 벤처'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고통도 야전 벤처 못지 않다. 밤샘 작업을 수시로 하는 기업 사정은 아랑곳 않고 보육기관 직원의 퇴근시간에 맞춰 냉난방을 꺼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에어컨이나 전열기를 설치하면 전기세나 화재 위험을 운운하며 눈치를 준다. 심지어 정부 주관기관 손님이 내려온다는 이유로 입주업체들로부터 일정액을 갹출해 접대비로 쓰는 보육기관이 있을 정도다.
이밖에 인력난과 업체간 기술 교류 미비도 지역 벤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전국 정보통신 실무인력 중 70~80%를 배출했다고 자부하는 대구·경북에서 인력난을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 대전에서 지역 출신 인력을 구하기가 더 쉽다.
게다가 벤처에 대한 지역민의 이미지는 이름없는 영세 중소기업보다 못하다. 벤처기업에서 일한다는 말을 꺼낼 때는 '능력이 없으니 대기업에도 못 들어갔지'와 같은 무언의 모욕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지역 벤처인들은 스타벤처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다. 골드뱅크, 메디슨, 한글과 컴퓨터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수준의 벤처가 등장하면 투자자들도 몰리고 지역민의 의식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벤처기업인들이 투자기관에 굽신거리고 보육기관의 눈치를 보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스타벤처의 탄생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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