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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자 성월'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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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한국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2001년은 천주교 신유박해(1801년) 200주년이 되는 해. 당시 신유박해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순교자는 200여명을 헤아릴 정도로 대부분의 천주교 지도자를 잃은 참혹한 박해였다.

지난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시성식에서 한국 103위의 성인이 탄생했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 이전, 초기 순교자들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 기해박해 전에만 해도 1791년 신해박해에서부터 을묘·정사박해(1797년), 신유박해,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에 이르기까지 큰 박해가 잇따랐다.

이들에 대한 시복(諡福)·시성(諡聖) 운동은 일찍 시작된 편이다. 103위 시성식 이듬해인 1985년 이미 한국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98위'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을 인준하고 추진위원을 위촉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열기가 식고 있던 중 최근 신유박해 200주년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조사연구작업과 운동에 다시 관심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대구대교구(교구장 이문희대주교)는 지난해 교구 관내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순교록 '대구의 순교자들'을 발간하면서 시복시성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을해박해·정해박해·병인박해 등으로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한 순교자들은 13명.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천주교인은 10명이다. 1815년 14명, 1839년 6명, 1866명 3명이 순교했다. 성 김대건신부(안드레아)의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은 1815년 관덕정에서 참수당했으며, 최봉한(프란치스꼬)은 경상감영에서 서른의 나이에 옥사했다.

지난해 10월 교구장 이문희대주교는 순교자 23위의 시복시성운동을 공식선포했다.한편 전주교구는 1989년 교황청에 '윤지충(바오로)등 다섯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청원서'를 올려 허락을 받았으며, 원주교구에서는 황사영과 최양업신부에 대한 시복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이 운동에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중이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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