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박정자(연극배우)

사진을 찍는 것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에 거부감이 큰 데도 늘 사진을 찍혔다. 어느 순간, 내 서랍에 미처 정리되지 못한 사진들이 낙엽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음 한쪽이 종이처럼 접혀져 있는 것을 느꼈다. 시아버지의 앨범을 볼 때도 그랬다. 여덟개나 되는 저 앨범들이 그의 추억을 위해 무슨 힘이 될까. 나는 늘 의구심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세상을 저버린 후에는…하고 생각했다. 그때 저 사진들은 얼마나 처치 곤란한 짐이 될 것인가.

사진을 늘어놓으니 집이 다 모자랐다. 사철 옷을 정리하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닌데, 사진을 정리하자고 드니 그건 하루를 바쳐야할 만큼 큰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진들에는 쉰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던, 그리고 그토록 상처받는 것에 익숙했던 나의 과거가 응고돼 있었다. 어떤 사진을 버리고 취할까? 누군가 이 일을 대신해줄 순 없는 걸까? 나는 골치 아프고, 그리고 서글펐다.

나는 연극과 관련된 사진을 보따리에 싸서 극단 사무실에 갔다. 후배들에게 말했다. "필요하지 않다면 너희들 손으로 없애줘". 그들에게 사진을 주면서 나는 생각했다. '살아서 내 제사를 내가 치르는구나'.

사진을 없앤 다음, 갑자기 모든 과거가 유실된 듯한 박탈감이 밀려왔다. 시원하기는커녕 뜻하지 않은 불행감과 맞닥뜨리자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는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만취되었다.

술에서 깬 다음날, 나는 유쾌했다. 안타까움도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잃어버린 과거를 위무하는 나를 느꼈다. 이제 할 수만 있으면 사진을 찍지 말아야지. 그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가. 내 손으로 과거를 정리하는 건 또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건 나의 슬프고도 기쁜 작별의 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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