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지 아파트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감나무에도 단풍이 들었다. 하필이면 꽃나무도 아닌 감나무를 관상용으로 심은 조경업자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게 느껴지는 것은, 빛깔이 그 어떤 활엽수 못지 않게 발갛고 고운 탓이리라.
이렇게 단풍이 눈에 드는 날은 아무래도 여유있게 산책을 하는 편이 제격이다. 얼마전만 해도 아파트 뒤꼍으로 난 산책로 가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심어 놓은 푸성귀들로 즐비했는데, 그 작은 텃밭도 밭이라 그런지 가을걷이 흔적이 역력하다. 아주까리며 고추며 옥수수들이 늘어서 있던 밭은 텅 비어, 이제는 잎이 거의 시든 호박줄기만 늘어져 있다. 그래도 그 사이로 늙은 호박이 누렇고 탐스럽게 여물어 있어, 전에는 빈 공터가 아니라 필경 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그런 푸성귀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꼼지락거리는 것이 있어 자세히 보니, 새 한마리가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쪼아먹고 있다. 아마도 텃밭 주인이 추수를 하다 흘리고 간 콩알을 주워 먹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열심이라서 소리내어 걸음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을 해도 인기척에 놀란 새는 하던 짓을 멈추고 금세 파드득 저쪽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열심히 모이를 쪼아먹던 그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야릇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사람이 버리고 간 저 조그만 것으로도 새는 살아가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무에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가 하는. 그리고 사람이 제아무리 모든 것을 버리려고 노력해도 저 새 만큼의 소박함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 아닐까 하는.
욕심이 빚어낸 짐을 제 스스로 지고 산 탓일까… 저잣거리에서 부대끼며 사는 인생이 새 같기야 하랴마는, 그래도 가끔은 마음에 빈 터를 하나 만들어 놓고 버려진 작은 콩알에도 만족하는 소박한 여유를 만들고 싶기는 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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