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狂氣)'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때로는 미치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작품을 통해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위대한 화가.
그들에게는 단순한 재능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광기'가 바로 그 '무엇'이 아닐까.
대표적인 '광기의 화가'로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한 사람이 있다. 조선시대 화가 최북(崔北,1712~미상)이 바로 그 주인공.
이 둘은 미치광이 화가로,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나갔지만 '어쩌면 이렇게 같을까'하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닮은꼴의 인생을 살았던 점이 눈길을 끈다.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 회화의 엄격한 화풍과 격식을 무너뜨린 화가 고흐를 대표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 사용과 대담한 화면 구성, 독특한 붓자국.
당시 일본에서 수입된 목판화에 매료됐던 그는 여기에서 곧잘 아이디어를 얻었고 일본 판화를 모사(模寫)한 작품도 상당수 제작했다.
최북 역시 30대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방문해 당시 일본 작품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고흐가 일본 목판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고흐만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듯 진정한 최북의 화풍은 그의 말년에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냈다. 젊은 시절 그의 작품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붓놀림이 돋보였던 당시 유명 작가들의 화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낌없는 붓놀림, 대담한 색채 사용으로 기존 조선 회화의 틀을 깨는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내 나갔다.
고흐를 더욱 고흐답게 만드는 것은 그의 광기어린 일생때문일 것이다. 한때 선교활동도 했을만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가 어느날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린 사건은 작품 자체보다 더 유명한 일화.
"지난 일요일 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메종 드 톨레랑스 1번지에서 라셀이라는 여인을 찾아가 자신의 귀를 건네준 뒤 '잘 보관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를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본 경찰은 다음날 고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용의자를 발견했다. 심한 출혈에도 불구하고 생명엔 지장이 없었으며 용의자는 곧바로 정신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고흐가 작품 활동을 했던 아를르 지방신문에 실린 기사의 한토막이다.
막상막하(莫上莫下)란 고흐와 최북의 광기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최북 역시 그림을 요청했다 얻지 못한 세도가가 자신을 위협하자 "남이 나를 손대기 전에 내가 나를 손대야겠다" 며 자신의 손으로 한 쪽 눈을 찔러 멀게했다.
금강산 구룡연을 구경한 뒤 "천하명인 최북은 천하명산에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며 투신했던 일도 유명한 일화.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 거드름을 피우는 고관에게 엉터리 그림을 던져준 일, 자신의 작품을 몰라주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그림을 박박 찢은 일 등 최북의 기행은 끝이 없다.
자잘한 세상의 법도나 구속을 초월한 채 세상을 희롱하며 살았던 칠칠(七七) 최북의 생활 태도는 그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의 호는 호생관(毫生館). 문자 그대로 붓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이름인 북(北)을 반으로 쪼개 자신의 자(字)인 칠칠(七七)을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누구나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예쁜 초상화나 세련된 풍경화보다는 거칠더라도 영혼이 있는 인생을 그리겠다"며 일생을 '팔리지 않는 화가'로 불행하게 보냈던 고흐의 인생은 권총자살로 막을 내렸다. 뜨거운 아를르의 태양 아래서 독주를 마시며 하루 14시간씩 그림을 그리던 중노동으로 인해 악화된 정신질환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오베르의 들녘에서 자신의 가슴을 총으로 쏜 그는 즉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이틀뒤 숨을 거뒀다. 그의 저승길에 유일한 위안은 의사가 불을 붙여 물려준 파이프 담배뿐.
최북도 자신의 광기 때문에 죽음을 맞았다. 하루에 막걸리 대여섯되는 마셔야 했던 그는 열흘을 굶다 그림 한 점을 팔아 술을 사 마신 다음날 눈속에 쓰러져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자신의 광기를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던 두 명의 닮은꼴 화가.
둘의 차이점이라면 비록 사후(死後)지만 고흐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데 비해 최북은 자신의 후손들에게서조차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다. 金嘉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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