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1-9-9-9는, 천년의 장려한 일몰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20세기도 이울었다. 21세기까지 1년을 더 꼽는 산술적 주장은, 서둘러 세기의 종언을 재촉하는 '세계의 연대' 앞에서 속절없이 밀렸다. 이미 세기의 교대식을 진행한 지구촌 곳곳에서는 축포와 함성이 지축을 흔들고 있으며, 뉴 밀레니엄 찬가는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저문 세월에 대한 회한이오, 동터오는 새날을 맞는 설렘이리라.
그럴 것이다. 우리가 일찍부터 새 천년의 도래를 카운트다운한 소이는, 지난 세기를 뒤덮었던 혼돈과 불안의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어서 벗어나고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기적 욕망을 앞세운 과학의 진보는 그 어느 세기보다 눈부신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그 대가인양 소용돌이친 야만적 폭력과 혹독한 재앙은 유례없는 인류의 위기로 나타났다. 거짓과 위선, 오만과 편견, 광기, 무질서, 음모, 이기주의가 춤추면서 인간성은 파멸로 내달았다.
20세기를 얼룩지운 그러한 그늘들은 고스란히 지난 1년 우리사회의 초상이었다. 옷사건으로 촉발한 추악한 거짓말의 끝없는 행진은 온 국민을 우울하게 했다. 일년 내내 온 나라에 자욱한 각종 의혹들은 세기말의 시야를 가렸다. 진실이 실종한 자리에 위선이 활개를 쳤다.
그로 인해 우리사회는 급발진 차량처럼 좌충우돌로 굴렀다. 사회기강의 중추인 검찰은 만신창이로 얼굴을 떨구었으며, 사회시스템의 도덕적 긴장이 형편없이 허물어졌다. 오만한 권력은 끝끝내 민심을 외면했다. 정쟁으로 지고 샌 한해였다.
눈덩이 같은 빚더미 위에서 경제회복을 자랑하는 그 한편에서는 사회의 막장으로 밀려난 이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빈부의 골은 사상 최악으로 깊어져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
세기말의 시대 풍조는, 국적불명의 거리문화, 최고의 상품성으로 등장한 '가벼움', 혼란스런 성(性)담론이 주류(主流) 처럼 행세했다. 참으로 어지러운 풍경이었다무엇보다도, 지난 세기 벽두부터 모든 이데올로기를 경험하며 격동의 시대를 산 우리 민족은 여전히 동강난 채다. 무작정 달린 근대화는 아직도 '날림 공화국'의 오명을 드리우고 있다. 늘 쫓기는 세월이었다.
그러했지만 한강의 기적은 참으로 위대했다. 환란을 탈출하려는 온 국민의 금모으기 행렬은 세계가 놀란, 감동의 드라마였다.
그렇게 요동친 오욕과 광영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이제 새 천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이 대전환의, 전 세계가 옷깃을 여미는 지금, 긴 호흡으로 소망한다. 새로이 맞는 세상 또한 20세기의 문법(文法)으로 독해하고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저 광대무변한 인터넷의 대륙 그 중심에는, 인간이 굳건히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그리고 이 순간의 까닭 모를 두려움은 공연한 것이기를. 아마도 지구촌은 그렇게 꿈꾸며 마지막 밤에 들 것이다.
그러면 잘 가거라, 20세기여.
金成奎 부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