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선장으로 출연했던 탤런트 최불암씨는 강구항에서 촬영을 마친 뒤 "땅은 씨를 뿌려야만 거둘 수 있는데 바다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인간에게 이처럼 풍성한 수산물을 가져다 준다"며 바다 예찬론을 폈다.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각종 수산물의 공급처인 바다는 울타리 없는 목장이다. 특히 청정해역 동해바다는 과거 어느 곳이든 그물만 던졌다 하면 그물이 터질 듯 고기가 잡혔다. 항·포구마다 고기가 넘쳐나 운반 수레에서 고기가 길바닥으로 줄줄 떨어질 정도로 풍어는 일상화 됐었다. 지금은 술안주와 간식용으로 고가 어종이 된 쥐치의 경우 십여년전만 해도 고기축에도 들지 못했다. 어판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쥐치는 말 그대로 처치 곤란이었다는 게 어민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잡으려고 해도 없다. 엄청나게 잡아 버린 뒤 자취를 감춰 버렸다. 동해안을 대표하는 어종인 명태도 마찬가지다. 지금 동해안에 건조되고 있는 명태들은 거의 대부분 캄차카 반도 등에서 잡아온 원양산이다. 명태 새끼 노가리도 별도의 어종으로 구분하는 바람에 남획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됨으로써 결국 명태가 사라졌다는 게 어민들의 분석이다.
영덕 등 동해안의 특산물인 대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덕군 강구항과 축산항에는 대게 통조림 공장이 성업했다. 당시 축산항에서만 대게철엔 서울로 가는 대게가 하루에 8t트럭 10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10상자도 안 잡히는 실정이다. 대게가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게뿐 아니라 무게가 4 ~5kg 나가는 왕게, 털게 등 갖가지 종류의 게가 났다. 그런 동해안에 지금은 고기가 줄어들고 있다.
어민들은 남획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기엔 어자원 보호를 위한 장기적인 대책은 실종된 채 어업 허가만 남발해 온 수산정책이 거들면서 잡고 보자는 식의 무차별 어업으로 치어까지 남획됐다. 또 일부 어종을 제외하곤 연중 조업이 허용되다 보니 어자원 육성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철저한 어자원 보호와 육성정책을 펴 왔다. 연안 12마일 이내에는 낚시업과 정치망 어업만 허용된다. 어업강도가 높은 트롤과 저인망은 어류 산란기인 6월부터 9월까지는 조업을 못한다. 눈앞에 있는 연안은 저인망이 끌고 그 바깥은 트롤이 그물을 끌다 보니 연안에 있는 치어는 성어가 되기도 전에 잡히고 치여 어류들이 견디지를 못하는 우리나라 바다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설상가상 신 한·일어업협정의 직격탄을 맞아 일본 근해어장 조업이 없어지거나 대폭 줄어들면서 동해안 어민들은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연간 20만t씩 일본 근해에서 잡아오던 국내 어선들의 어획량은 신 한·일어업협정의 타결로 올해는 어획쿼터량이 13만t으로 줄어든 데다 동해안의 중심 어업인 대게 자망과 홍게 통발어업은 아예 조업자체가 불가능하다.
경북도내에서만 일본EEZ(배타적경제수역)조업을 해 온 대게자망, 통발 등 142척의 어선이 감척보상비를 받고 올해중 정부에 배를 인도할 예정이다.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어장은 크게 줄어들었고 어장을 잃은 일본 근해조업 어선들은 연근해조업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어민들 스스로 고기가 없다고 하는 동해연안의 조업경쟁은 거세지고 고기 남획에 대한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경북도내 어선 수는 4천872척. 배 규모별로는 1t미만 1천719척, 1~5t미만 2천121척, 5~8t 미만이 405척이다. 따라서 연안어업을 할 수 있는 8t미만 어선이 4천245척(87%), 먼바다인 근해어업을 할 수 있는 8t 이상은 수치상 13%를 조금 넘지만 8t이상 배들이 잡는 어획량이 60%를 넘는 것으로 경북도 관계자는 추정했다.
지난해 11월말까지 경북도내 전체에서 잡혀 위판된 어획량은 11만1천600여t으로 98년 동기 7만8천t과 비교, 43%증가했으며 위판액은 2천72억원으로 98년의 1천569억원에 비해 32%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그러나 전체 어획량 가운데 오징어가 7만600여t을 차지, 오징어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아 어획량이 안정적이지 못한 취약성을 안고 있다. 연근해어업 의존율이 이렇게 높은 이상 연안에 어자원이 풍부해야 어민들이 살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토에서 동해안은 아직은 가장 깨끗한 청정해역이다. 동해안에서 나는 수산물은 일본에서도 일등품으로 인정해준다. 청어알, 도루묵, 물가자미,성게알, 조개류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한다. 수출경쟁력이 있는 동해안의 수산물을 기르고 가꾸어야 한다.
동해안은 우리 어민의 보고다. 어민과 수산당국이 힘을 모아 수년간만 어자원 보호에 나선다면 동해안은 옛날처럼 항·포구마다 다시 고기가 넘쳐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수산정책부터 어자원보호와 육성으로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 강구항에서 만난 충남 대천항소속 오징어채낚기 어선 선장 이종남(48)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제주도까지 오징어 조업을 하는 배들로 넘쳐난다"며 마구잡이식 허가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김용창 동해구 기선저인망 조합장(76)은 대폭적인 감척과 폐어망 처리 등을 통해 바다환경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 조합장은 특히 어민들이 살고 수협이 살기 위해선 고기값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건실한 중매인들이 위판에 참여하는 한편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경북도 김병목 해양수산과장은 수산정책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일본은 수십년간 어자원 조성 행정을 펴왔습니다만 한국은 어민을 위한 행정을 펴왔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어민들에게 어자원조성 이야기는 꺼낼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어민편의 위주의 행정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조업이 우선이고 어자원 조성은 그다음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치어를 아무리 방류한들 어자원이 보호되는 바다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중삼중의 그물에 치어는 크지도 못한채 끼여서 폐사하고 몰래 내다버린 폐그물에 고기들은 살곳을 찾지 못한다.
경북도는 내년부터 이중 이상으로 된 자망 그물의 사용은 점차적으로 규제하기로 내부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공청회와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한다는 각오다. 치어보호와 남획에 대한 제도적 장치없는 어자원 보호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 셈이다.
이같은 근본방침을 토대로 경북도는 300만미의 치어와 8억원의 예산으로 전복과 넙치, 우럭을 연안에 방류하고 50억원을 들여 고기집인 인공어초를 투하, 연안 어장원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또 폐어망 인양에 적극 나서 금년중 바다밑에 있는 이들 어망들을 조사, 폐어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다 청소를 전개해 나간다고 한다.
동해연안이 새 천년을 시작으로 어자원이 넘쳐나고 어선마다 만선의 깃발을 올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2000년이 돼야겠다.
영덕·鄭相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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