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과중한 근로시간과 저임금으로 되돌아간 생산직 근로자, 잇단 억대 연봉자의 출현 속에 존재의미마저 상실한 화이트칼라…. 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 분위기속에 인간적인 냄새는 사라지고 처절한 생존논리만 난무하고 있다.
전통적인 노동질서 붕괴와 맞닥뜨린 봉급생활자들의 현실을 3회로 나누어 짚어본다.
편집자
이승철(가명·36·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매일 12시간 이상 일한다. 지역의 한 염색가공업체에서 1년8개월째 일해온 그는 섬유업체 밥을 먹은 지 20년된 베테랑. 그런 그도 몇년째 계속해온 주·야 2교대 근무에 삶의 의미를 느낄 틈조차 없다.
"공장에서 살다시피 해요.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해야 밥이라도 먹죠. 딸린 식구가 넷인데…" 휴일없이 주 80시간 이상 꼬박 일해 받는 대가는 월 110만원. 그래도 숙련공이라 70만원 받는 단순노무직보단 꽤 많은 편이라고 했다.
"체불이 잦은데도 불평을 못해요. 배운 게 이것 뿐인데 타 업종으로 가봐야 더 못한 대접만 받을 게 뻔하잖아요" 말을 서둘러 끝낸 이씨는'빨리 집에 가서 한숨 자야겠다'며 나염기 소음을 뒤로 한 채 종종걸음쳤다.
생산직 근로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IMF후'맞교대'로 상징되는 과도한 근로시간이 다시 고개를 들고 몇년전 깎인 임금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이들은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대구지역 전체 제조업 종사자는 모두 16만1천여명(99년말 근로복지공단 집계). 이중 40%를 차지하는 섬유업체 종업원들이 처한 근로조건은'지역 대표업종'이란 수사(修辭)가 무색할 정도로 열악하다.
상당수 공장의 월 근로시간이 300~350시간으로 전국 제조업 평균치인 210~220시간을 훨씬 웃돈다. 일요휴무가 지켜지는 곳도 거의 없다. "12년간 11곳의 직장을 거쳤지만 연월차제도란 게 있다는 사실을 몇달전 노조가 설립되고서야 알게 됐다"는 이모(31)씨. ㅈ섬유에 4년째 근무중인 그는 "석달전만 해도 작업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식사를 기계 옆에 서서 빵과 우유로 때워야 했다"고 했다.
15만여명에 달하는 지역 건설(일용)직 근로자의 노동강도는 더욱 심하다. 건축경기가 차츰 살아나고 있다지만 소위 '돈내기(정해진 시간내 일정한 작업량을 완료해야 하는 변형근로계약)'로 대표되는 가혹한 근로조건은 여전하다.
대구지역건설노조 윤종수(45)위원장은 "일거리를 따내려면 무조건 돈내기를 해야 되고 하루 14, 15시간동안 할당된 작업량을 채워야 일당을 준다"며 "50대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따라잡지 못해 일거리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어떤 이는 벤처기업, 주식 등으로 쉽게 수억원을 번다는데 생산직 근로자는 한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을 손에 쥐기 어렵다.
성서공단내 ㄱ금속에서 만난 정성길(가명·48)씨. 지난해 부도가 난 이후 12시간 주·야 2교대근무가 하루 9시간으로 줄었지만 마음은 더 무겁다. 잔업이 줄어드는 바람에 예전 110만원쯤 받던 월급이 80여만원으로 준데다 상여금마저 체불됐기 때문. 그나마 20년째 아파트 청소를 해온 아내(48)가 벌어오는 월 30만원을 보태야 다가오는 설도 그럭저럭 넘길 판이다.
지역 제조업체 곳곳에서 법정근로시간(주 44시간) 위반과 상습체불, 여성과 연소자의 2교대 근무 등이 판치고 있지만 누구하나 문제 삼는 이가 없고, 단속의 손길도 멀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박찬희 총무부장은 "IMF이후 생존에만 급급한 지역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노동강도를 따질 겨를이 없다"면서 "예전 수많은 희생과 쟁의를 거쳐 획득한 '하루 3교대'등 성과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70, 80년대의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되돌아간 형국"이라고 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찾아볼 수 없고 '톱니바퀴'같은 노동의 연속에 시달리는 오늘의 생산직 근로자. 이들 앞에 '노동의 신성함'이란 경구는 한낱 사어(死語)에 불과한 게 아닐까.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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