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천년 교육-(3)교육, 기득권 상속 수단인가

한 가지 조사를 해 보았다. 대상은 200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대구ㄷ고 재학생과 졸업생 30명. 조사내용은 부모의 직업과 학력, 주거형태.

결과는 이렇다. 30명 가운데 아버지가 대졸이상인 학생은 17명, 부모 모두 대졸이상인 학생도 10명이나 됐다. 주거형태는 대부분 자기 집. 아버지 직업은 공무원 6명, 회사원 7명 외에 식당이나 주유소 독서실 경영, 약사, 개인택시 운전 등이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식당이나 건물 소유주도 눈에 띄었다. 학교 관계자는 "가정형편으로 보면 20명 정도는 나름대로 자녀 공부에 투자할 여력이 있으며 어려운 집안 학생은 2, 3명"이라고 전했다.

간단한 조사지만 "가정형편과 부모 학력이 자녀의 학교 성적과 비례한다"는 세간의 풍문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꼭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얘기와 책으로 유명한 장승수씨만 해도 그렇다. 그리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이었지만 남다른 공부로 지난 96년 서울대 인문계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이같은 성공사례는 갈수록 잘 들리지 않는다. 99학년도 대입수능시험에서 400점 만점을 받은 오승은양의 경우 아버지는 행정고시에 수석합격, 현재 행정자치부 고위직으로 있고 어머니는 교사다. 2000학년도 수능 만점인 박혜진양도 아버지가 변호사다. 14세 신동으로 올해 입시에서 연세대 의예과에 합격한 이우경군은 아버지가 치과의사이며 취미는 피아노 연주와 테니스.

다시 ㄷ고 경우를 보자. 올해 수험생의 아버지라면 전쟁을 전후로 태어난 50세 안팎이다. 이들이 고교를 졸업한 60년대말~70년대초 대학 진학률은 5%도 되지 않는다. 대졸이상 아버지가 30명 가운데 17명이라면 비율로만 10배 이상인 것이다. 일찍부터 학원에 다니고 과외도 한두번쯤은 해봐야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요즘이라면, 서울지역 대학에 보내려면 한달에 100만원이상은 들일 수 있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가정형편도 보통 이상은 돼야 가능할 것이다.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 보자. 지난 96년 이후 대구 도심 최대의 아파트단지를 형성한 수성구 수성4가 옛 코오롱 부지 일대에는 80여평 아파트부터 10평대 원룸까지 약 3천가구가 모여 있다. 여기서 요즘 그룹과외가 유행이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과목당 월30만원부터 5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는 것. 대형 아파트 주부들 4, 5명이 모여 2, 3과목에 월 100만원 정도로 A급 과외선생을 부르는게 소문이 나면서 아파트 크기나 가계사정에 따라 과목당 20만원, 10만원, 5만원까지 다양한 유형이 생겨났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생각도 그만큼 다를 터. 이 동네 한 주부는 "과외비가 비쌀수록 자녀들에게 더 잘해주는 듯한 우월감을 갖는 사람이 많은 반면 더 비싸고 좋다는 과외선생에게 보내기 위해 생활비를 줄이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유아교육부터 꼭같이 일어나고 있다. 더 좋은 학원에, 더 유명한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예약을 하고, 줄을 서는 일도 흔하다. 지난해 11월 유명 사립유치원 입학경쟁에서 이웃 딸아이는 합격했는데 자기 아이는 떨어지자 두살난 이웃 아이를 목졸라 죽인 한 일본 엄마의 이야기가 혹 우리의 경우로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지난 60, 70년대에 학부모들도 교육열은 높았다. 하지만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못배운 한'을 풀기 위해 자식 공부를 뒷바라지 했지만 관심과 기대가 높았을 뿐 경제적인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가난한 집 아이가 공부를 잘 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출세하는 경우를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요즘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의미부터 다르다. 한풀이로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자녀에게도 이어주거나 더 크게 만들기 위한 교육열이다. 이는 고학력자일수록, 나름대로 사회적 기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게 교사들의 얘기다. "토론장에서는 사교육비가 문제라고 떠들다가도 돌아서면 좋은 과외선생 구할 데가 없느냐고 물어오는 대학교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러니 같지만 이게 현실이지요"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에 돈을 들이는, 어지간히 벌어서는 자녀 교육비 감당도 어려운 세태는 날이 갈수록 더 냉정해지고 있다.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 가면서 교육에 투자하면 앞선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해 버리는 것이다. 살림을 줄여서 초등학생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낼라치면 옆집에서는 방학 때 아예 미국이나 호주 등지로 어학연수를 보내버리는 식이다.

한 초등교사는 "1학년 입학 때 책을 줄줄 읽고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는 아이와 자모음을 처음 배우는 아이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뒤처진 아이들이 일찌감치 자신감을 잃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녀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곧 부모에게도 충격으로 이어진다. 상급 학교에 들어갈수록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커지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결국 일부를 제외한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상처를 던져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 발전에 활기를 던져준 것은 교육에 의한 계층이동이 가장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회학자들의 진단은 그 이동의 틈새와 가능성이 갈수록 좁아지는 오늘날 다시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어디 있을까. 아직 우리가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겠지만 엘리트 교육과 대중교육을 구분하는 외국 사례를 보자. 영국, 미국처럼 사립학교에는 부유층이나 상류층 자녀들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특화시키게 하고 공립학교에서는 일반 학생들을 받아 국가에서 집중투자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나서서 사교육 근절과 교육 불균형 해소를 위해 우리나라에도 이젠 이같은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고착돼버린 차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차별화시키는게 낫다고 주장한다면 어찌 될까. 당연히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다. 개개인의 내심이야 어떻든 여론의 몰매를 맞을게 분명하다.

한 고교 교사의 견해. "엘리트 교육은 현재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 측면에서 본다면 일리가 있고 그런 얘기를 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일부 사립초등학교는 실제 비슷하게 되고 있잖습니까. 그러나 우리 국민 특유의 양면성, 이상에 치우치는 경향에 비추어 대놓고 인정하긴 힘들 겁니다. 게다가 외국의 경우 귀족들이 존경받지만 우리는 졸부들의 과시욕 대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인 것도 문제겠지요"

현재 대중교육의 틀 속에서도 해결책이 없지는 않을텐데 이같은 성급한 논의가 뒷전에서나마 일어나는 것은 결국 장기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권이나 교육관료들이 교육에 대한 비전 없이 시류나 상황에 영합하는 정책들을 끊임없이 내놓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국민의 정부 들어 세번째인 문용린 교육부장관이 취임한 후 첫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을 자꾸만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 제도의 큰 틀은 유지됩니다. 그러나 수능시험은 여전히 중요하며 공부를 하지 않고 대학에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98년말 2002학년도 대입제도가 발표된 이후 학생들은 "놀아도 대학 간다"고 생각하는데, 학부모들은 공부를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자녀에게 학력을 대물림하려는 학부모들이 잠시도 쉴 수 없다며 학원수강이며 과외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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