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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주사위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윷가치가 있다. 육면체인 주사위는 한 면 마다 제나름의 운명이 독립적이지만 윷가지는 그렇지 않다. 네개의 윷가치들이 허공을 한바퀴 휘 돌아 떨어지면서 한 순간 엎치락 뒤치락 서로 부따히고 닿이며 의논 끝에 비로소 하나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 또, 개, 걸, 윷, 모. 윷짝은 떨어져 봐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유래한 것이다. 여전히 온 나라가 고 스톱판으로 떠들썩하지만 올 설에는 윷놀이가 제법 고스톱판을 밀어 낼 기미가 보여 반갑다. 경북의 영양이나 청송의 자치정부가 중심이 돼 살이 쪄 통통한 붉은통싸리나무 윷가치를 엄청 많이 보급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도시인들의 주문이 쇄도 했다. 명절이라도 우리의 고유민속놀이를 쳐다보지도 않던 세간의 인심이 되돌려 지려는가. 야무지고 촉감 마저 달디 단 싸리나무 윷가치를 만지작 거리는 아이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15㎝안팎 길이의 윷가치는 박달나무로도 만들기는 하지만 뭐니해도 싸리나무가 최고다. 싸리나무는 검붉고 가운데를 짝 가르면 결이 고르다. 특히 배가 흰색으로 구분돼 기분이 좋다. 이것을 삶고 윤기나게 들기름 매기면 다소 투박하더라도 온통 자연을 손안에 잡은 느낌이다. 여기에 흥에 겨운 가족이나 친지 들의 박수소리 한데 어울리면 올 설은 그만이다. 윷놀이가 재미있는 것은 윷가치가 결정짓는 운명을 어떻게 29밭으로 되어있는 말판에다 적용하느냐다. 여기서도 엎치라 뒤치락이다. 편을 짜 서로 섞바꿔 윷을 던지며 상대편의 말들을 잡으려 안간힘이다. 항상 쫓는 말과 쫓기는 말이 윷가치의 운명에 의지한채 머리 싸움을 하며 잡느냐 잡히느냐다. 모나 윷이 나오면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여기서도 또한 그야말로 무상한 변화들이 나와 흥미를 더한다. 윷놀이는 길다란 장작윷이 대종을 이루지만 특히 경북지방에서는 밤윷이라 해 윷가치를 밤알만하게 만들어 간장종지에 담아 마당 한복판에서 덩석에 던지며 놀기도 한다. 밤윷은 온 동네 어른들이 모여 또 다른 공동체의 의미를 낳는다는데 의의가 높다. 이런 좋은 놀이를 두고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눈덩이가 붉게 부어 오를 정도로 밤을 새워 가며 고스톱으로 보낼까.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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