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비전 바다 (9)국가기간 산업 '해운'

해운은 세계가 교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지속된 가장 오래된 산업의 하나. 국제무역이 존재하는 한 그 역할이 증대될 것이며 특히 수출 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해운업이야말로 국가산업의 기간망이다. 바다가 세계 경제를 휘어잡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운업의 장악은 필수적인 것이다.

무역이 본원수요라면 해운은 이를 물류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 창출과 고용창출을 일으키는 파생수요라 할 수 있다.

매년 세계 교역량의 75%에 달하는 45억t의 화물이 뱃길을 따라 이동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교역량의 99.8%(98년말기준)를 선박을 통해 수송하고 있다. 외화가득액도 96억달러(98년말 기준)에 달할 만큼 해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물적 이동 과정을 해운이라고 보면 해운은 각국이 필요한 수출입 화물의 수송과 이동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셈이다.현재 대부분의 아파트단지에서 난방과 취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LNG연료의 경우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만약 해운이 없었다면 국내 LNG수송은 사실상 불가능 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방울도 나지 않는 석유도 마찬가지다.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로부터 국내 유조선사들이 연간 100만배럴 이상의 원유를 끊임없이 국내로 실어나르고 있다.

이밖에 수입의존도가 큰 곡물류와 비철금속, 각종 기계부품류 등의 국내 공급이 대부분 해상수송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을 해상수송이 아니면 도저히 국내 반입을 못한다고 볼 때 해운은 우리 경제의 젖줄임과 동시에 우리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해운은 또 국가안보와도 연계돼 있는 전략적 산업이다.

지난 90년 발발한 걸프전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미국은 자국 해운산업의 약세로 큰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본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송된 물자는 무려 160만t. 미국은 이 중 수송선박의 절반을 외국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외국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을 경우 선박임대가 어려워 전쟁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미국은 또 이라크의 해상수송로를 봉쇄해 석유수출 길을 막는 등 사후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1.2차 세계대전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독일과 일본은 각각 영국과 미국에 의한 해상공격으로 보급로를 차단당해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0년대 오일쇼크후 세계 해운업계가 불황의 높은 파고에 휩싸이며 한 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무역은 해운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고 앞으로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지금 해양은 지구촌화의 첨병임과 동시에 수송선단의 뜨거운 전쟁터다. 세계 각국이 자국 선박에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는 곧 해상운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98년 한해동안 96억달러의 운임 수입을 올렸지만 97년과 비교하면 11억달러 정도 감소했다. 즉 각국 화주들이 국내선박이 아닌 외국 선박을 통해 화물을 실어날랐기 때문이다.

결국 해운업은 운임과 직결되기 때문에 각국은 운임인하 효과를 위해서라도 세제상 혜택을 볼 수 있는 편의치적선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선주는 자국인이지만 선박은 세제상 자국보다 유리한 외국에 등록시킴으로써 법적으로 외국선박이 되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은 인건비가 싼 외국인 선원고용이 자유스러우며 선박과 관련된 각종 세율이 낮아 운임인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심화시키는 단점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같은 방법으로 빠져나가는 선박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이와 관련된 세율을 대폭 인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선진 해운국가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사들의 경영혁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해양대 최재수 교수는 "일본 최대선사인 NYK는 일본에 사장실과 비서실만 두고 있을 뿐 나머지 핵심 부서는 싱가포르 뉴욕 런던 등 세계 물류중심 도시에 현지화 시키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기존 관념에서 탈피해 세계 중심항에 본사를 둘 수 있는 혁신을 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제 세계 해운시장은 강자가 없으며 국적이 필요치 않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국제 해운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오히려 중국이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다. 부산해양청 김성용 항무과장은 "현재 세계 6위권인 우리 해운업이 중국에 의해 언제 추격당할지 모를 만큼 중국이 무섭게 성장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97년과 98년 양대 선사였던 APL과 씨랜드를 각각 싱가포르와 덴마크에 매각했다. 운임이 싼 외국선박을 이용해도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싱가포르는 현재 외국 선사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은 국영선사인 코스코를 내세워 저임금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코스코사의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면 향후 10년내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것이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이와함께 러시아도 기존 해군력과 조선력을 바탕으로 세계 해운시장에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력이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즉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지역 국가가 세계 해운시장의 흐름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해운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무역시장에서 운송수단 확보와 운임에서 우위를 점하면 미국, 유럽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하에 해운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조선업과 금융업, 중공업이 세계 시장에서 수위를 달릴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해운업의 발전에 따른 부산물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력과 뛰어난 조선력을 갖추고 있어 해운업의 기반은 탄탄한 나라이다. 여기에다 선사들의 경영혁신과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2010년쯤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해운업 발전이 곧 국가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최소한 제철원료, 발전원료, 가스, 석유 등의 국책물자를 수송하는 수송선과 수출화물 수송용인 컨테이너선 등에 대한 자금지원, 세제혜택, 부채비율 불산입 등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 6위의 위치에서 정상으로 가기위해서는 정부와 선사, 선원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 李相沅기자

◈한국해양대 최재수 교수

"자국화자국선정책(우리나라 화물은 우리 선박을 이용하자)은 이제 더이상 먹혀들지 않습니다"

한국해양대 최재수 교수는 이제 애국심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WTO체제하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선사의 선박국적이탈(선주는 내국인이지만 선박은 외국에 등록하는 것)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며 "화주들이 운임이 싼 곳에 화물을 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유치하기 위한 선사들이 이같은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주는 한국사람이지만 선박은 온두라스 국적인가 하면 반대로 선박은 한국 국적이지만 선주는 제3국 사람인 것처럼 해운업은 국경이 없다는 것이 최 교수의 말이다. 운임이 싼 선박을 찾아 화물을 운송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97년이후 선박을 외국에 매각, 정기선(定期船)이 없다.

최 교수는 "고세율과 인력난은 결국 선박의 국적이탈을 부채질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해운이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배를 탈 수 있도록 선원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함께 정부의 세제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최 교수는 또 "선사들도 일본과 미주지역 위주의 영업활동에서 벗어나 남미와 중동, 유럽쪽으로의 영업망을 확충해 시장을 다변화 해야만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李相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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