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지적인 탐구열이 지독하리만치 강했다.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는데다 일은 노예들이 해주니 시간이 남아돌아 그 시간을 지적 탐구에 쏟았다. 마치 올림픽경기처럼 지식과 사유를 경쟁하듯이 즐겼고 그 자체가 오락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바탕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대철학자들을 낳았고 그들의 사상적 근간은 근 2천년간 서구사회를 지배하였다. 적어도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기 전까지….
'갈릴레오 이전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가'(에디트 위제·프랑수아 베르나르 위제 지음, 문신원 옮김, 이끌리오 펴냄)는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우주관을 다뤘다·고대인들의 우주 창조 신화로부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상상한 지구와 우주의 모습,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등이 전개한 과학적 우주론, 이어지는 중세신학 체계의 상호 영향과 발전, 단절 등을 서술하고 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뒤집어엎기까지 이전의 우주관에 대한 체계를 이미 확립했다. 그는 지구 주위로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순으로 돈다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는 세상의 질서,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로 만들어졌다. 존재의 뿌리를 애타게 찾았던 만큼 과학적 기반이 없었던 초기 지구인들은 신화로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티베트의 신화들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600여년 뒤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은 규칙적으로 지구 둘레를 돌고 토성과 같은 행성은 주전원을 그리며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게 보인다고 사유했다. 그리고 먼 바다의 항해로 지리상 발견을 하기 전까지 멀리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지구표면의 대부분이 대륙으로 뒤덮여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렇듯 우주론은 철학을 낳았고 수학과 천문학을 파생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 철학, 에피쿠르스 학파와 스토아학파와의 치열한 경쟁, 뒤이은 기독교적 우주론이 불러온 자연학과 신학의 분리현상이 나타난다. 인도와 중국의 우주론, 이슬람의 우주론도 따로 소개된다. 결국 고대와 중세의 우주관은 학문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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