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 입맛 돋우는 데는 짭짤한 안동간고등어가 최고지요"쌀뜨물에 담가 소금간을 적당히 뺀 뒤 밥짓고 남은 가마솥 숯불에 석쇠로 자글자글 구워낸 간고등어맛이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자랑하는 (주)안동간고등어 공장장 이동삼(李東三·60·안동시 천리동 233)씨. 평생 고등어 간잽이만 해온 그이기에 간고등어 말만 나오면 자랑이 끝이 없다.
"열다섯살때쯤 껍질이 벙글벙글 일어나게 구운 간고등어를 처음 먹어봤지요. 그 때 입안에 뱅뱅돌던 감칠 맛은 지금도 못잊어요"안동시 길안면 만음리 외딴 마을이 그의 안태 고향. 허리가 휘도록 농사지어도 배곯던 시절이었다. 소작농의 6남매 중 다섯째인 그에게 학교라곤 6·25전쟁때 그만 둔 초등학교 3년이 전부였다. 떠꺼머리 소년시절, 나무 한 짐 지고 50리밖 안동 장터에 나가 간고등어 한 손을 산 것이 훗날 40년 고등어 간잽이의 동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고등어와의 인연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그가 나기전 가세가 괜찮았던 시절, 할아버지는 소달구지 10대를 몰고 영덕에서 안동 쳇거리시장으로 고등어를 실어나르는 운송업을 했던 것이다.
내륙인 안동에서 웬 간고등어일까? 간고등어가 안동 특산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부터. 영덕 등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를 소달구지에 가득 싣고 운반했는데 밤새 가봤자 안동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생고등어를 서울이나 충청도 등 먼 곳까지 실어가자면 소금에 절여야만 했다. 자연히 염장기술이 발달했다. 한때는 30여개소의 도가가 있을 정도로 염장업이 성업을 이뤘다. 특유의 감칠 맛과 푸른 등빛깔이 그대로 살아나는 기술까지 개발,바닷가 사람들도 안동간고등어를 찾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열아홉살때, 지긋지긋한 가난을 털어보겠노라며 고등어도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종일 고등어 배를 따고,내장을 씻어내고, 소금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씻고, 물기를 걷어낸뒤 간맞추고···간고등어 한 손을 만들자면 열여덟번 손이 가야 했다. 물이 쩍쩍 얼어붙는 겨울철 도가일은 쉽지 않았다. 추석·설날 단대목엔 제수용 고등어 준비로 밥먹듯 밤샘을 했다. 당시 월급은 겨우 쌀 두말값 정도였다. 그래서 직업을 바꾼 것이 탄광 막장일. 60년대초 강원도 영월 탄광에서 1년여 광부일을 했지만 그 일도 신통찮았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간고등어 행상을 시작했다. 신새벽 어물 경매장에 나가 고등어 한 두짝을 떼와 왼종일 간고등어를 만든뒤 이튿날 자전거에 싣고 골목골목을 누볐다.
"처음엔 '고등어 사~려'라는 소리가 안나와 그냥 '고등어''고등어'라고 고함만 질렀어요. 말투가 별나서 그런지 내가 만든 간고등어 상표가 됐지요"구시장의 초가집 빈 방을 사글세로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농사짓던 아버지도 아들을 따라 간잽이 일을 시작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고등어도가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경험많은 간잽이들은 서둘러 전직을 했다. 법없이도 사는 이씨. 일에 몸을 사리지 않는 그였기에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세군데 도가에서 일이 있을때마다 그를 불렀다. 그러다 지난해 특산품 생산업체인 (주)안동간고등어가 문을 열면서 제대로 일감을 잡았다. 한우물을 파온지 어언 40여년. 요즘도 하루 평균 600손을 만든다. 강산이 네번 바뀌는 동안 무려 500만손이 넘는 간고등어를 생산한 셈이다.
예부터 간고등어는 배에서 잡아 바로 소금을 친 '뱃자반'을 제일로 쳤다. 현재 이씨는 제자리간 뱃자반맛을 내는 유일한 간잽이. 염장과정에서 신선도를 유지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비결이다. 특히 물기가 적당해야 소금이 적당하게 달라붙어 맛있게 간이 맞춰진다. 이 '적당한 물기'는 오랜 경험에 의해 감으로 잡는다.
"원래 간고등어는 짭쪼름해야 제맛이 납니다. 가을철에 절여 이듬해 봄까지 소금에 '짜려져'곰곰한 맛을 내는 것이 진짜 안동간고등어지요"
60년대까지만 해도 안동 간고등어는 독간잽이와 얼간잽이 두 종류로 만들었다. 독간잽이는 고등어가 많이 잡히는 가을철 큰 독에 소금 한 켜, 고등어 한 켜씩 켜켜이 쌓아 소금간을 진하게 한 것. 고등어살이 발효돼 불그스레한 색을 띠게 되며 쌀뜨물에 담가 소금간을 살짝 뺀 뒤 구워 먹는다. 얼간잽이는 제철 고등어에 소금간을 삼삼하게 한 것이다. 옛날엔 장기간 유통이 가능한 독간잽이가 인기였으나 요즘은 신선도가 높은 얼간잽이를 주로 만든다고.
'안동 껑껑이'이동삼씨. 간고등어처럼 소금에 절여진 그의 손은 참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지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닳아있다. 하지만 요즘 이씨는 어느때보다 즐겁다. 올초부터 향토 문화계 인사들이 찾아와 안동간고등어 길놀이 보존회를 만들고 영덕~안동간 고등어 운반풍속을 재현, 민속놀이로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으며 이씨를 특산품 제조기능보유자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 등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간잽이 일을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만든 간고등어가 전국 유명백화점은 물론 바다 건너 미국교포들에게까지 인기를 끄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됐다. 간잽이 일만으로 2남2녀 모두를 대학에 보내 배움의 한을 대신 풀게된 것도 고마울 뿐이다.
마지막 안동간고등어 간잽이 이동삼씨. 그는 끝까지 안동간고등어 자랑을 잊지 않는다. "안동 간고등어는 남동해 연근해에서 잡은 참고등어만 사용합니다. 수입고등어나 기름고등어, 점고등어를 쓰는 곳도 있지만 그래가지곤 제대로된 맛을 낼 수 없지요"
-權東純기자 pinoky@imaeil.com
----마지막 간잽이 문화재 지정 움직임
"안동포, 안동소주와 마찬가지로 안동간고등어도 안동 특산품이기 때문에 그 제조과정과 전통 기법이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무형 문화재적 가치를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안동간고등어 제조기능에 대한 무형 문화재 지정 여론에 대해 예총 안동지부 사무국장 권두현(35)씨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1호로 배분령 안동포짜기 기능보유자가 지정돼 있고 도 무형문화재 12호로 조옥화씨가 안동소주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있다"며 "같은 안동 특산품으로 지정된 안동간고등어도 전통적인 제조 기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기능보유자를 발굴해 조속히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안동간고등어 제조기능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에 가장 적극적. 조만간 경북도 문화재위원들을 찾아 이 문제에 대한 협의에 앞장설 예정이다. 지난해 안동시와 안동과학대학이 관학협동으로 지원, 특산품 생산 업체인 (주)안동간고등어를 출범시킨 이후 최근 안동간고등어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역 관련 학계도 무형문화재 지정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 재미교포들과 합작공장 설립 협의차 미국을 다녀 온 (주)안동간고등어 대표이사 류영동(40)씨도 "미국 교포 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이씨의 손맛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라며 "전통 안동간고등어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이씨의 독특한 제조 기능은 회사의 사운이 걸린 보배같은 존재"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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