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부터 머리 속에는 온통 의약분업이란 단어뿐이었다. 생각하다 지쳐서 해결 시한인 20일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19일 협상은 결렬되고 환자 진료를 마친후 폐업계를 제출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저녁에는 동료의사들과 모임을 가졌다처음에는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즐거운 대화가 오고갔다. 의사들은 진료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박혀서 생활하기 때문에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부러워한다. 아내와 더불어 신혼 후 처음으로 평일 날 호젓하게 동해안이나 다녀오겠다고 얘기하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그 동안 보지 못한 영화나 실컷 보겠다는 동료도 있었다.
환자를 보는 것이 항상 지긋지긋하고 어떻게 하면 환자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 꿈꾸던 우리들. 그러나 막상 환자를 떠나는 현실이 닥치자 멈칫하게 돼 버렸다.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것이 의사들에게 영원한 굴레냐, 선택된 행복이냐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폭탄주까지 이어졌고 결국 울음까지 터뜨리는 동료도 있었다.
의사들은 항상 피해의식에 젖어있다. 정부가 도와주는 것 하나 없이 진료를 일일이 간섭 만하고 싸구려 진료만을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 또한 비싼 보험료를 내고도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억울해한다. 서로가 억울하게 당한다고만 생각하는 세월이 20년. 이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
해결의 길은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이 아니다. 서로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서둘러 몇 가지만 합의를 해서 이 사태를 해결한다면 나중에 또 다른 큰 불씨를 안게 된다.
폐업 이틀이 지났다. 이번 기회에 며칠간 조용히 쉬다가 오겠다던 친구들이 하루가 안되어 돌아왔다. 병원을 떠나 있으니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있다. 사법 처리가 무서운게 아니라, 행여 이번 사태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다.
빨리 병원으로, 환자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돈 몇 푼 올려 주었더니 돌아왔다는 얘기는 듣기 싫다.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설명하고, 소신껏 진료해도 간섭 받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의사로서의 삶을 보장받고 싶다.
임재양 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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