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벤처 5인방

무너진 지역 경제기반을 다지기 위해 벤처 육성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수적으로 400개를 넘어선 지역 벤처. 그러나 고대하는 '스타 벤처'의 등장은 아직 요원하다. 이런 와중에 지역은 벤처가 둥지를 틀기에 구조적으로 부적합하다는 비관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기술로 승부하는 지역의 벤처 5개사 대표를 만났다. 이들 중엔 해외 전환사채를 발행, 자금을 동원하는 전문 경영인이 있는가 하면 아직 가정주부 티를 벗지 못한 초보 경영인도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벤처 육성론을 들어본다. 편집자

◆도원텔레콤- 이철호 사장

"벤처를 왜 지역에 묶어두려 합니까. 지역적 한계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오른 벤처는 서울로 진출해야 합니다. 떠나는 벤처를 보고 배은망덕하다고 나무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업의 생존 목적인 이윤추구를 위해선 할 수 없는 일입니다정보통신기기를 생산하는 지역의 대표적 벤처기업 (주)도원텔레콤 이철호 사장은 벤처 육성의 문제점을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업종에 따라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한 벤처가 있는가 하면 적당한 시기가 되면 떠날 벤처도 있다는 것"물론 본사와 생산공장은 지역에 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수익을 지역에 환원하고 고용창출 효과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본사 기능은 서울 이전이 불가피합니다. 본사 주소지가 대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업에 상당한 지장이 있습니다최근 이 사장은 명함에 적힌 회사 주소 중 서울 영업소 주소를 가장 위로 올려놨다. 지방기업이라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또 명목상 본사는 대구에 두지만 이달 중 서울로 영업 본거지를 옮길 계획이다. 도원텔레콤이 생산하는 정보통신 장비의 주요 고객은 99%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본사가 어디냐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최근 도원텔레콤은 '이엠스퀘어'라는 원격디지털 영상전송기를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자가방법 영상전송기로 자신이 전세계 어디에 있든 노트북이나 단말기를 통해 가정이나 점포의 이상 유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장비.

현재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등에 수출 중이며, 샘플제품은 해외 구매처 60여곳에 600개가 나가있다. 조만간 국내 시장에도 진출한다. 지난해 153억원 매출액을 올렸으며, 올해 이엠스퀘어로 매출액 100억원을 올릴 예정이다."이달 중 경북 칠곡에 이엠스퀘어 생산공장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최근 해외전환사채의 성공적 발행으로 자금 상태는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확보된 무선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디지털영상분야로 본격 진출할 생각입니다"

◆컴텍스-권용범 사장

"지역 벤처 성장의 가장 큰 장애는 경제 주도층이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벽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또 지역 기술에 대해 스스로 저평가하고 무조건 외지업체만 선호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에 있어 지역의 대표적 벤처인 컴텍스 권용범 사장은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틀이 벤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서 첨단산업단지 입주 문제를 두고 가슴졸임을 했던 권 사장으로선 지역에서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절감한 것. 다행히 첨단산업단지 입주문제가 늦게나마 순조롭게 처리된 덕분에 빠르면 8월초 공장 신축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드라이에처, ASCVD, 진공증착시스템 등을 개발해 삼성코닝,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이미 납품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미국, 일본의 수출 주문이 들어와 기기를 생산 중입니다. 이들 장비는 대당 10억~20억원에 이르는 고부가 제품입니다. 주문량에 맞추려면 생산 설비 확충이 시급한데 자꾸 늦어져 걱정입니다"

올해 컴텍스의 매출 예상액은 80억원. 공장 신축으로 본격적인 생산라인이 완비될 경우 2003년엔 매출액 44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사업분야도 다양화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뿐 아니라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PDP, FED 제조공정용 장치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부설연구소를 통해 청녹색 단파장 소자에 사용되는 첨단소재인 가륨나이트라이드(GaN)의 단결정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인적 자원에 있어 대구·경북은 어느 지역보다 뛰어난 벤처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각종 기계 장비의 제조에 적용되는 기술은 당장 반도체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언제든지 고부가가치화할 여력이 있다는 뜻이죠"

컴텍스는 장차 세계 시장에서 기술 독점적인 장비를 공급하는 대형 반도체 장비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 외국의 기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외국업체들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기술 표준을 내놓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올텍 석창길 대표

"성서첨단산업단지가 성공하려면 우선 행정적 간여를 배제해야 합니다. 또 기업의 자생력을 해치지 않도록 지원도 최소화해야 합니다. 주위에 경쟁관계가 가능한 업체를 대거 유치해 스스로 생명력을 키워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구테크노파크 입주업체로 반도체 및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멤스 ;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 제조용 장비를 개발하는 울텍의 석창길 대표는 지역 반도체 관련 벤처기업의 자생력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건이라고 밝혔다.

울텍이 개발하는 멤스는 실리콘으로 초고밀도 집적회로, 머리카락 절반 굵기의 초소형 기어, 손톱 크기의 하드디스크 등 마이크론(100만분의 1m) 단위의 초미세 기계구조물을 만드는 기술. 전형적인 실험실 창업 벤처인 울텍은 98년 창업 첫해 매출액 1억4천만원, 지난해 8억2천만원을 올렸으며, 올해엔 30억원선에 이를 전망이다. 실용신안 3건, 특허 8건을 출원해 놓은 상태며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의 국책프로젝트 3건을 수행 중이다. 울텍 제품의 주수요처는 반도체 및 정보통신 소자업체와 국책연구소.

"회사가 성장할수록 지역적 한계를 크게 느낍니다. 1주일이 멀다하고 서울로 출장을 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특히 대전 이남으론 같은 업종의 기업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결국 최신 기술이나 개발 동향 등에 대한 정보교류를 하려면 서울로 가야죠석 대표는 첨단분야일수록 동종 업계간 기술교류가 필수적이며 성서첨단산업단지도 이같은 정보 흐름을 주도하도록 가급적 많은 관련업체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위의 벤처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다양한 지원제도를 활용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인력은 물론 자금, 부지, 기술개발 등에 대한 지원시책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대학 밖에서 벤처를 하는 기업인들을 잘 몰라요. 수도권 벤처들이 지원을 받기 위한 경쟁률을 10으로 본다면 지역 벤처는 1밖에 안될 정도로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특히 제조 관련 벤처는 산자부, 중기청 등 지원기관이 많은 편입니다"

◆앞선사람들 박성수대표

"뛰어난 벤처를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벤처에게 인력이야 말로 모든 시작의 근간이니까요. 당장 제가 몸담고 있는 염색분야만 해도 첨단기술을 갖춘 인력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염색공장의 염료 배합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컬러 매칭시스템을 생산하는 (주)앞선사람들 R&D 박성수 대표는 유능한 인력양성을 벤처육성의 최대 과제로 지목했다. 특히 대학에서 관련분야 전공을 해도 정작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점이 문제라는 것. 학부 과정 커리큘럼이 예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는 지적이다.

사실 앞선사람들은 컬러 매칭 분야에선 선두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갖춘 차세대 컴퓨터 컬러 매칭시스템 '컬러리스트 플러스'를 생산, 국내 40여개 기업과 연구소에 판매했다. 경기도 시흥에 본사를 둔 앞선사람들이 경북테크노파크에 앞선사람들 R&D란 벤처를 설립한 까닭은 섬유도시 대구의 대표적인 섬유벤처를 키우기 위해서다.

"아직 지역 염색업계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반품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직 상당수 기업들이 수작업으로 염료를 배합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외국산 컬러 매칭장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방법이 너무 까다롭고 매뉴얼도 외국어로 돼 있어 기업들의 활용도는 낮습니다"

지역 출신으로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20여년간 염색분야에 몸담고 있다. 98년 개인 회사를 설립한 그는 국산 컬러 매칭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98년 12월 마침내 제품 개발에 성공, 외국제품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벤처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기업인들의 외제 선호입니다. 국산은 무조건 싸고 모든 서비스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선사람들 R&D를 통해 염색과정의 자동화 기기를 모두 국산화할 계획입니다. 국산이 외산보다 뛰어난 품질에 비싼 값으로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포텍스 김경숙대표

"대학시절 전공도 그렇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동양화를 한지에 프린트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색번짐을 막는 코팅액을 개발하는 벤처를 시작했죠. 제품을 개발해 놓고 보니 어떻게 사업화해야 할 지도 몰라 막막했어요"

경북테크노파크 입주업체인 포텍스 김경숙 대표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2남매의 엄마로 전업주부 생활을 하던 김씨는 동양화나 전통문양을 한지에 그대로 인쇄해 생산하면 해외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겠다는 생각을 했다.

"97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습니다. 한지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잉크가 번지지않는 코팅액을 만드려고 했어요. 화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보니 엄청난 시행착오를 경험했죠. 헤어 스프레이를 써보기도 하고. 아무튼 가능한 방법은 모두 동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98년 6월 어렵사리 만족할 만한 시제품을 개발하게 됐어요"

1차 사업화로 폴리에스테르에 코팅액을 입힌 제품을 내놓았다. 포토기능을 가진 일반용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할 경우 포토전용지보다 우수한 인쇄품질이 나왔다.가정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것은 폴리에스테르에 인쇄한 뒤 비닐코팅을 입히면 가정용 액자가 완성되는 셈. 기존 포토전용지의 경우 장기 보관에 어려움이 많지만 비닐코팅을 한 폴리에스테르는 별도 액자없이도 훌륭한 장식품이 될 수 있다. 이밖에 한지나 얇게 만든 나무에도 코팅액 처리를 하면 얼마든지 인쇄할 수 있다. 포텍스는 이미 시제품을 출시한 상태며 양산체제가 갖춰지는대로 본격적인 시장 진출에 나선다.

"제품만 개발했다 뿐이지 사업은 문외한이에요. 개발과정이 길어진 탓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보니 사업화는 엄두도 안나더군요. 다행히 테크노파크 입주를 계기로 새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특히 사업화 초기에 테크노파트의 도움은 절대적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벤처 육성을 위해 보다 빨리 보육사업 기반이 구축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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