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하늘의 조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 조정에서는 변방의 사정을 잘 안다는 몇몇 대신들로 하여금 하삼도를 순찰하게 했다. 막연하나마 왜국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수, 이광, 윤선각 등이 각기 경상, 전라, 충청 감사가 되어 군기(軍器)를 손보고 성(城)을 수축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태평세월이 계속되어 서울과 지방 할 것 없이 모두가 편한 것만을 좋아해서 부역을 기피했다. 때문에 양남(兩南)에 쌓은 성은 모두가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크고 넓은 것만을 취해서 사람을 많이 수용하는 데에만 힘썼으므로 적을 막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못되었다. 위아래가 모두 썩고 문드러져서 시늉만의 대비책으로 눈가림이나 한 것이었다.

한양 도성 안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등등곡(登登曲)이라는 놀이가 대유행했는데, 선비들이 떼를 지어 미치광이나 괴물처럼 노래하고 춤추며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으며 도깨비나 무당의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는 괴상한 놀이였다. 나태와 안일함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괴상한 풍습이었다.

또한 미천한 백성들은 도성 안팎의 산에 모여서 술과 풍악을 즐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더욱 성행했다. 또한 '머지 않아 세상이 바뀔 테니 살아 생전에 취하고 보자'는 말이 번졌고, 심지어는 노는 데에만 정신을 팔다가 파산하는 자들까지 속출했다.

3월 보름, 제관(祭官)들이 태조의 건원릉 앞에 도열해서 능 제사를 드렸다. 능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나와서 제관들은 대경실색했고, 그 뒤로도 하루에 한 번씩, 혹은 며칠에 한 번씩, 그 소리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었으나 능을 지키는 참봉과 군사들은 귀에 익은 나머지 나중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 해 4월13일에는 궁궐 샘물에서 무지개가 일어나 임금의 몸을 핍박했다. 임금이 두세번이나 피해도 무지개가 계속 따라오므로 결국 임금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왜적이 부산을 함락한 날의 일이다.

부산 첨사 정발(鄭撥)은 절영도에서 사냥하다가 새벽 안개를 타고 쳐들어오는 왜선을 보았다. 처음에는 조공선(朝貢船)이려니 했다가 이상하다고 여겨서 성으로 돌아왔으나 곧 왜병이 뒤따라 상륙했다. 성은 함락되고 첨사는 화살 한대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좌수사는 적병이 왔다는 소문만 듣고 군기와 식량을 불사른 다음 도망쳤고, 이각은 왜적의 소식을 듣고 동래로 들어갔다가 부산이 함락되자 겁을 먹고 물러나 소산역에다 진을 치고 도망갈 기회만 엿보았다.

큰 재앙을 내릴때는 하늘이 먼저 그 조짐을 보여준다. 나태와 안일에 젖어 망국적인 놀이에 탐닉하던 백성의 마음과 하는 짓이 그것이었고, 건원릉 위에서 들려오던 이상한 소리나 궁궐 샘물에서 시작한 무지개 따위도 그러했다.

지금의 사정은 어떠한가. 적군과 우군을 구분할 줄 모르는 어둠과 혼돈의 와중에서도 사치와 낭비와 방종으로 치닫는 백성,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또는 그것을 빼앗기 위해서라면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방색을 부추기는 망국의 처사도 마다 않는 잘난 분들의 거짓말과 위선과 탐욕을 보라. 하늘이라고 어찌 이보다 더 분명한 조짐을 보여줄수 있으랴. 이런 조짐들의 그 뒤끝이 무사한 것을 본 적 없으니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한양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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