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분양제도 문제있다-불가피한 사정에도 해약은 "안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아파트를 짓기도 전 분양금을 미리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파트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완제품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것. 일반적인 상품을 살 때 원료비부터 소비자가 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파트, 상가 등 건축물에 대해서 분양금 명목으로 소비자가 돈을 먼저 낸다. 이에 따른 피해 역시 시공사 쪽보다 소비자가 덤으로 지는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후진국형 아파트 분양 제도는 시공사 부도 이후 계약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된다.

특히 부도 위기 소식이 전해진 시점에 계약자가 해약을 하려고 해도 이를 받아주는 주택회사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현행법상 계약금을 내고 1회라도 중도금을 납부하면 계약자가 부동산을 사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시공사·계약자 쌍방 합의가 없으면 해약이 불가능하다. 계약자가 이사, 파산 등 불가피하게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에도 시공사는 법을 내세워 해약을 해주지 않는다.

우방의 경우 올 봄부터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계약자 상당수가 전체 분양금액의 10%를 포기하고 해약을 요구했지만 우방 측은 단 1건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우방 아파트 계약자 대다수는 자신들이 낸 계약금과 중도금이 실제 공사에 사용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우방과 같은 아파트 시공회사들은 현장 공사에 사용돼야 할 분양금을 다른 현장 또는 사업장으로 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상적으로 공사를 끝내고 입주를 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번과 같이 부도를 맞게 되면 분양금 납부율과 공정률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나 입주예정자들의 피해가 늘어나는 것이다.

또 중도금 문제도 정확하게 말하면 선납에 해당한다. 완제품을 공급할 때 돈을 내는 것이 일반적인 상거래라고 보면 소비자는 당연히 중도금에 대한 이자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종합해보면 아파트 분양자들은 계약시점부터 입주 때까지 경제적 피해에 대한 상당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자신이 낸 돈이 어떤 용도를 갖고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시공회사와 계약자의 불평등 관계는 계약자 피해를 더욱 키운다.

일단 시공회사가 부도를 맞으면 보증회사가 있다고 해도 아파트 계약자들은 입주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또 부도회사는 근본적으로 시공 이행 불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보증회사 쪽에 문제 해결의 열쇠를 넘겨 입주 예정자들의 고통을 키우는 결과를 빚는다.

대구경실련 최은영 부장은 "일반 상거래에서 찾을 수 없는 불평등한 계약관계를 원천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사업장이라도 부도 이후 계약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보증제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소비자를 보호할 것이 아니라 공급자·수요자의 불평등 관계를 조장하는 분양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全桂完기자 jkw6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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