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入冬)이 지났다. 일월산의 겨울은 미처 가을색을 다 벗지 못한 옻나무 단풍위에 하얀 서리가 되어 찾아왔다. 설화에는 못미치지만 쉬 접할 수 없는 시린 아름다움이 살갑게 우리 일행을 맞는다.
일월산을 보전하고 이를 전제로한 개발계획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광물과 임산물 수탈로 시작된 일월산 훼손은 50년대 한국전란 전후 대규모 화전 개척과 60∼80년대를 거쳐 이어진 산림벌채, 최근 무속인들의 마구잡이식 기도처, 굿당 건립 등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산정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시설은 일월산 훼손의 상징적 일면이다.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소산중봉(小山中峰)이 겹겹 줄기를 내리는 일자봉(日姿峰) 턱밑 수만평을 파헤쳐 철말뚝을 박고 레이더 기지와 군인들의 주둔지를 세웠다.
경북내륙 최고(崔高)지여서 전파 송수신이 용이 하다는 이유에서다. 이곳과 산아래를 연결하는 십리길 군사도로는 일월산 남북 주 능선을 양단해 놓았다. 얼마나 넓고 견고하게 닦았는지 관광버스만도 하루에 수십대가 오르내린다.
어느 산악인은 일월산 산행기에서 산정을 잃어버린 산의 모습이 슬프고 관광버스를 타고 산정을 오르는 산은 이미 산이 아니라며 훼손된 일월산의 모습을 측은하게 적었다. 차제에 일고있는 인간의 무지와 욕심이 만든 일월산의 생채기를 치유하고 제모습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당연한 이치다.
환경보전과 이에 수반하는 개발사업론을 얘기하는 영양군청 박원양(52)계장은 사업취지와 시급함을 이렇게 얘기한다.
"일월산은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들이 서식하는 자연박물관이라 할 수 있지만 정상의 훼손이 심해 이미 오랜전 천이(遷移)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량 송림이 사라지고 참나무와 물푸레, 상수리나무 등이 자리잡는 수종의 변화가 심각하고 해발 1천m 이상의 고산지대에 갈대 등이 자라는 것은 심각한 생태계 이상 징후로 볼 수 있어 복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박 계장은 일월산 권역개발과 정상가꾸기 사업을 입안했다. 환경보전과 개발사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영양군의 일월산자원화 사업이다. 오는 2016년까지 2단계로 추진될 이사업에는 천(天·해발 1천m 이상), 지(地·해발 400∼800m), 인(人·해발 400m 이하)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한다.
천(天)권역에는 산정 주변 산림복구와 환경정비사업에 주력한다. 자생 수종으로 산정의 산림지역을 복원해 천이중인 환경을 살리고 군사시설과 방송시설 주변 훼손지는 복토후 야생식물을 식재해 야생초화류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기존의 벤치 등 시설물은 자연 목재로 대체해 자연친화적으로 바꾼다는 것.
지(地)권역사업은 화전터와 폐광산 동굴 등을 이용해 반딧불이와 나비, 잠자리 탐험체험장과 자연관찰, 체험학습장을 조성한다. 나비를 유인할 수 있는 식물을 선정해 심고 잠자리의 서식이 가능토록 계곡 세천 주변을 따라 작은 소(沼)를 만들고 수생식물을 심는다. 반딧불이 복원을 위해 세천주변의 그늘진 곳에 이끼를 깔고 연못과 하천바닦에 우렁이와 다슬기를 키운다.
인(人)권역은 토양오염과 수질개선을 위한 일월면 용화리 광미야적정 침출수 유출방지 사업과 광미처리, 광산오염지구 복원사업이 핵심이다. 용화리 폐제련소 시설을 이용한 체험관과 탐방로, 야외집회장을 설치하고 일제때 만들어진 각종 시설물을 복원, 항일 독립운동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한다.
영양군의 또하나 일월산 보전 및 주변개발 주력계획은 토템공원 조성사업이다. 무속의 영산으로 유명하지만 이로 인한 산지 환경훼손은 심각하다. 산정부근에 황씨부인당이 중창된후 무속인들이 본격적으로 몰려와 산지, 계곡 곳곳을 허물고 암자나 사찰을 짓고 있다.
아무렇게나 두고 가는 폐 제물(祭物)로 인한 오염도 엄청나 거나한 굿판을 치르거나 기도철이 지난후면 계곡 곳곳에 나딩구는 제물 쓰레기가 작은 산을 이룰 정도다. 이런 폐해를 줄이고 무속의 성지를 제대로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기획이다.
산내(山內)지역을 피해 일월면 도곡리 온천지구주변 일대에 4만평 규모의 켄벤션센터를 건립, 컨벤션 홀, 토템문화연구원, 세계문화유산 영상관, 휴먼전시관등을 마련 각종 무속시연과 관련행사를 치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생태공원과 청소년 공원, 온천문화랜드 등을 함께 조성, 종합휴양단지화 해 오는 2003년에 세계 토템비엔날레를 개최할 예정이다. 부대적으로 경북북부지역 조선조유교문화권 개발사업도 병행, 산지 도로와 폐동굴 정비 및 개발, 황씨부인당 정비, 일월산 축제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월산 보전 개발계획도 2차적인 환경훼손의 여지를 갖고 있어 심사숙고 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일월산 권역개발을 연구한 김영준(53) 도시계획기술사는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에 대한 배려"라며 "아무리 친환경적 개발계획을 세워도 개발 그자체가 이미 환경훼손을 내포하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자원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당장 일월산자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인해 야기되는 환경훼손 대책도 문제다. 농업기반공사가 농촌용수 개발사업 목적으로 113억원을 들여 지난해 부터 시작한 일원면 도곡리 저수지공사. 월간마을 입구에서 연일 중장비 굉음이 울리고 일월산자락이 허물어져 내린다.
마을주민들과 주변 화전민들은 이미 고향을 떠나 버렸다. 공사장 입구 좌측 바위산에다 수로로 이용할 터널을 뚫고 있다. 오른쪽 능선을 형성하고 있는 일월산 자락은 이미 황폐화되고 있다.
이곳은 우량 소나무와 희귀 야생화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없이 시공처에서는 시급한 용수난 해결을 위해서는 개발이 당연하고 상대적 환경파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년 청기면 찰당골 일월산자락에 또 대규모 저수지공사가 시작된다.
고향을 수몰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조성된 '찰당골살리기 주민모임'이 농업기반공사와 영양군 홈페이지에 개발반대 입장의 글을 연일 올리고 있지만 아무런 반응과 대책이 없다. 외로운 외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같이 주민들이 난관에 섰고 일월산이 훼손되는 실제현장이 외면되는 상황이라면 영양군의 대대적인 보전개발계획은 그 성사여부와 성과 유무를 떠나 관련행정력을 자찬하는 한낱 장밋빛 청사진이자 허구적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일월산을 영산으로 온전히 지키자는 보전론과 무한의 자원적가치를 들춰내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이용하자는 개발론이 팽팽히 맞서는 국면에서 일월산은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보전론 조차도 전문가나 관계자의 광범위한 의견수렴 없이 마련된 영양군의 '나홀로 계획'이여서 충실치 못한 단면을 드러낸다. 천문학적인 재원확보도 힘들고 보전을 전제한 것이지만 여타 시·군이 산발적으로 내놓는 지역관광개발사업과 대별되는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월산 보전에 관한 최초의 종합계획이 공식적으로 개진된 점과 영양군의 책임있는 자세표명, 자치군정 최고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된다는 데서 한가닥 희망의 여지를 갖게하고 있다. 천세에 제모습 그대로 남아 민초들을 포용하는 일월산을 기대해 본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