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언유삼법

실상이 없는 말을 헛말이라 한다. 말을 하고도 말처럼 행하지 않는 것도 또한 헛말이다. 옥황상제가 헛말을 모아서 큰 자루 세 개에다 보관하여 두었는데, 어느날 한 천관이 그것들을 하계에다 버렸다.

세 개의 자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원(梨園)의 늙은 기생이 차지하고, 그 다음의 것은 어느 고을의 원이, 마지막 것은 이조판서(吏曹判書)가 차지했다. 이원은 원래 당(唐)의 현종이 속악(俗樂)을 익히게 하던 곳이었으나 뒷날 기생들이 거처하던 곳이 그렇게 불렸다.

이 세상에서 헛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늙은 기생이며 그 다음이 한 고을을 맡아서 다스리는 원이고 그 다음이 이조판서라는 뜻이다. 그대와 헤어지면 죽고 못살겠다는 기생의 말이나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는 원님의 말씀이나 벼슬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조판서의 언약은 그러므로 믿을 바 못된다.

이러함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믿기 좋아한다. 왜 그런가. 우선 듣기에 달콤하기 때문이다. 원님의 말씀을 들으면 고을이 금세 무릉도원이 될 것 같고 이조판서의 약속대로라면 벼슬을 얻어 크게 출세할 것이며 기생의 말을 들으니 이 세상에 나처럼 행복한 사내는 없다.

사람들은 헛말을 한다고 기생을 천하게 여기지만 원님과 이조판서의 헛말도 기생의 그것에 못지 않다는 것은 암시적이다. 벼슬아치들의 식언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들을 동열(同列)에 놓았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그 순위가 아예 바뀌어서 높은 분들의 식언이 기생의 그것을 앞질렀다.

묵자(墨子)는 말을 하는데에는 세 가지 법이 있다고 한다.

그 첫째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헤아려 말하는 것이고, 셋째는 실행으로 옮길 것을 생각한 다음에 말하는 것이다.

묵자는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라. 내가 하는 말이 과연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행위에 비추어 올바른가를 숙고하라. 헤아려 보고 말하라는 것은 과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또한 듣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볼때 그 말이 타당하게 여겨질 것인가를 헤아려 하라는 뜻이다.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또한 어떤 말이든 그것이 공론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묵자는 덧붙여 강조한다.

'다스리는 자는 모름지기 정치의 실제와 만민의 실정을 살펴서 말의 목표를 세운 다음에 비로소 말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가들은 말장난을 잘도 하고 또한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즐긴다. 어제의 이야기를 오늘에 뒤집으면서도 그것이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노라고 자랑하는 정치가들이 많다. 심지어 이들은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우롱하면서 속으로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 조금 전 국회의사당에서 이런 조치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던 장관이 집무실에 돌아오는 즉시 해당조치를 취하라는 명을 내린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면서. 이런일이 쌓이고 쌓이다가 급기야 우리 백성은 윗분들의 말씀은 아예 거꾸로 듣게 되었다. 불행이다.

아무리 좋은 조치나 법령이라도 그것이 거짓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그런 조치나 법령 따위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국가와 국민간에는 신뢰 이상 더 값진 것이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임에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나라의 정치를 맡고 있다.

말의 오염이 점점 심해간다. 말만 무성하고 되는 일은 한 가지도 없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백성은 어리석은 것 같지만 현명하다. 현명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그가 하는 말이 무엇보다 진심에서 나온 말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면 백성은 믿고 싶어하고 또한 믿는다.

한양대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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