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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서둘러 시행… 갈수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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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방학 포항지역 교육계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교육의 동반자가 돼야 할 교사와 학부모들간에 마찰이 갈수록 커져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계란을 던지고 집회까지 벌이는 사태다.

발단은 방학중 고교마다 실시하는 특기·적성교육. 전교조 포항지회를 중심으로 한 교사들은 이를 반대하는 반면 학부모들은 즉시 실시를 촉구하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의 골도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어디서 비롯됐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짚어본다.

▨원인

현 상황은 단순히 입시 열기가 유난히 높은 포항지역의 문제로 국한할 일이 아니다. 문제의 단초가 된 특기·적성교육부터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98년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새로운 입시제도의 모형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학력보다 학생 개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우선해 대학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제도였다. 현재 고교 2학년부터 대상이었고 수행평가, 특기·적성교육 등 새로운 방식이 학교에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입시과열의 주범으로 몰려온 보충수업은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교육부의 기본계획이 나온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대학들의 구체적인 입시요강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일반계 고교 교육이 교육과정에 따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대학입시제도에 좌우돼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너무 늦은 것이다.

특기·적성이라고 하지만 대학이 과연 무엇을 요구할지 모르는 상태. 추측가능한 대입 전형요소 가운데 변별력을 줄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수능시험 점수와 내신성적 뿐이라는 이야기가 지난해부터 공공연하게 번졌고 '결국은 학력'이라는 성급한 결론도 쏟아졌다.

이는 곧 고교 교육 파행으로 이어졌다. 특기·적성교육의 상당 부분이 과거의 보충수업 형태로 변질됐고 나머지는 체육이나 취미 등 학생들의 '놀이' 정도로 취급됐다. 방학중 특기·적성교육은 아예 보충수업 형태로 진행하는 학교도 많다.

포항에서 불거진 사태 역시 이같은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전교조 교사들의 주장에 학교측이 전면 중단으로 맞선 데서 비롯됐다. 포항의 한 교사는 "가뜩이나 대입제도가 혼란스럽고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학부모들이 방학중 학교교육 중단에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실

"전국 모든 고교에서 실시하는 특기·적성교육을 포항서만 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느냐" "모두 학부모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현실성도 없는 특기·적성교육을 주장한다". 포항지역 학부모들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다.

지난해 경우 대부분 고교들의 특기·적성교육은 학과 수업을 보충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방학은 물론 학기중 교육도 마찬가지다. 고문연구반, 생활영어반, 영작문반, 수학사반 등 이름은 그럴듯 하지만 내용은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 주요 과목을 위주로 수업에서 미진한 부분을 채워주는 형태다.

물론 특기·적성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교과관련 과목도 포함된다. 비교과 과목은 볼링, 수영, 컴퓨터 등 일부를 제외하곤 수강희망 학생이 없어 반구성이 안 되고, 방학중에는 교과관련이 아니면 더욱 어렵다는 학교측 답변도 일리가 있다.

특기·적성교육이 아직은 보충수업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보충수업이 빚는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학교의 학원화, 입시과열 등 고교교육 정상화를 해치는 것은 물론 보충수업 참가 교사와 제외 교사간 갈등도 빚어낸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을 보충수업, 학원, 과외 등에 의존해야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학교에서 특기·적성교육을 시켜달라"는 포항지역 학생들은 학원비나 과외비 부담, 독서실보다 편한 교육환경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자신도 모르는 의타적 요소가 내재돼 있다면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다.

포항여고 한 학생은 "방학중에도 학교에 감으로써 무언가 얻는게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보충수업을 원하는 것"이라면서 "어렵더라도 이 두 가지를 포기하고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를 갖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대책

새 입시제도와 관련해 현재 고교2학년생들은 최대의 피해자이다. 고교 입학 후 '공부 안 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폐지된 대신 특기·적성교육만 한두 시간 받고 일찍 학교를 빠져나갔다. 모두 노는 분위기가 2학년때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대학입시가 눈앞에 닥치자 답답해졌다. 대학들이 어떻게 학생을 뽑을지 모르는데 또다시 학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다급해졌고 보충수업이든, 학원이든, 과외든 찾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대입제도를 하루 빨리 확정하고 정착시키는데 있다. 특기와 적성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확실히 보여야 고교의 특기·적성교육도 정상화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학들의 학력 최우선 방침이 사라져야 보충수업도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아울러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은 바람직한 특기·적성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한층 노력해야 한다. 교육의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구의 한 교사는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여러 모델을 시도해 봤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현장경험이 어우러진 우수 사례, 실패 사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방학은 더없이 좋은 재충전과 휴식의 기간이다. 자율학습의 기회도 많다. 하지만 방학 내내 보충수업에 시달려야 한다면 이 모든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 공부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학부모와 교사들의 갈등을 지켜봐야 하는 포항지역 고교생들은 이번 방학 동안 더욱 많은 것을 잃게 됐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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