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에밀레 맥놀이

신라 천년의 소리라는 에밀레종(鐘)의 여운(餘韻)은 우리들의 마음자락을 여미게 한다. 가슴속을 울리는 긴 여음(餘音)을 듣고 출가(出家)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글로 표현하는 이 자체가 '신비의 음'에 대한 불경스러운 일일게다. 9일 경주에서 있은 9년만의 성덕대왕신종 타종(打鐘)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변함없는 웅장한 소리에 숨을 죽였다는 보도다. 삼라만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가히 둘레가 쳐지지 않을 부드러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에밀레종의 울림이 아름다운 이유를 맥놀이현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종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주파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2개의 파동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주기적으로 변하는 합성파(合成波)가 이루는 효과를 맥놀이 현상이라고 친다. 성덕대왕 신종의 무늬라든지 두께나 무게의 비대칭 구조로인해 한 부위의 종소리가 다른 부위의 종소리와 부딪쳐 특유의 울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종내부의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쇠찌꺼기 등이 비대칭성을 이뤄 1분이 넘는 여음을 낸다는 게 에밀레종의 맥놀이 현상에 대한 지금까지의 규명이다.

△경북출신의 소리 전문가인 배명진 교수(숭실대)가 이 비대칭에 의한 맥놀이 발생 이론은 잘못됐다고 최근에 주장해 주목을 끈다. '에밀레종의 아래부위에서 발생하는둥근소리의 탄력이 맥놀이 현상의 근원이다'라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지난 7일에 발표했다. 종을 치면 둥근종소리가 발생, 수축과 확산을 반복해 이 수축과 확산이 종소리의 탄력주기이며 이것이 이어지면서 맥놀이 주기가 된다는 논리다. 성덕대왕신종의 아랫부분의 오므라든 부위에서 발생하는 원모양의 종소리가 맥놀이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무늬·두께·무게의 비대칭구조가 맥놀이를 발생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성덕대왕신종보다는 에밀레종으로 우리곁에 더욱 친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종의 소리는 '과거의 소리'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소리다. 찰나가 아니라 억겁(億劫)으로 이어지는 '영원의 음(音)'이라야 제격이다. 누렁소 등같은 산등성이를 타고 울려퍼지는 에밀레 종소리에 소스라쳐 깨어날 수만 있다면 우주를 이해한 사람일게다.어디 그런 깨달음이 한 순간에 올 수 있을 것인가. 평생을 정진해도 모자랄 일을 언감생심, 그것도 불경(不敬)이다. 다만 나라가 거덜날 지경에 빠져도 제앞가림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각성의 소리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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