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플라타너스에 자꾸 눈길이 간다. 잎새들을 흔들며 가을이 지나가 버리자 나무는 부쩍 여윈 모습이다. 플라타너스 낙엽은 예쁘지가 않다. 단풍잎이나 은행잎처럼 곱게 물들지 않는다. 누렇게 마른 낙엽들이 바람에 휩쓸려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있다. 정말이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슬퍼 보인다.
추워지기 시작한다. 여위어 가는 플라타너스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시리다.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난다. 목화 솜 두둑이 놓은 이불 속에 대여섯 남매들이 발을 묻고 듣던 어머니의 옛 이야기 한 자락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지면 꼬맹이들은 저도 모르게 어머니에게로 바짝 다가간다. 그러다가 수건에 싸서 묻어 놓은 아버지의 밥그릇에 손이 닿았을 때의 그 따뜻함이란! 서로 제 손으로 감싸 안으려고 싸우기도 한다.
군불 지피는 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어머니는 이따금 그 끝불 속에서 잘 익은 고구마를 꺼내주기도 하고, 계란 껍데기에 안친 고슬고슬한 밥을 건네주기도 하신다. 그때 내 옆에 경쟁자가 없으면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아랫목 밥그릇 온기 그리워
아랫목에 묻어 둔 아버지의 밥그릇처럼 따스한 동화가 그리운 계절이다. 동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TV동화'란 프로그램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도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오후, 포장마차에서 빵을 굽던 어머니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우산을 찾아든다. 교실 아래에 서서 목을 젖히고 쳐다보노라니 창 밖으로 딸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져 버린다. 딸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자 어머니는 그제야 자신을 내려다본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딸이 부끄러워한다는 생각이 든 어머니는 쓸쓸히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얼마 후, 딸의 학교 전시회에 간 어머니는 어떤 그림 앞에서 눈시울을 적신다. 밀가루로 얼룩이 진 앞치마를 입고 우산을 든 채 교실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밑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 제목과 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여쁜 딸은 그 시간 어머니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슬퍼서 더 아름다운 동화, 나에게는 없었던가.
바람이 몰아쳐서, 시절이 하 수상해서, 몸이 시리고 마음은 더욱 시리다. 가슴속에 숨겨진 채 잊고 있었던 한 편의 동화를 꺼내서 읽어보자. 아득한 유년의 기억 속에서 찾아낸 나만의 동화 속에는 그리운 부모님이 계시고, 고만고만한 형제들이 있고, 골목길에서 함께 놀던 동무들이 있다.
척박한 나를 위해 동화 읽자
그들과 함께 했던 슬픔과 기쁨, 견디기 어려웠던 고단함까지도 그립다. 그 보살핌과 사랑을 내 먹고 살았으리니 이만한 바람에 어찌 춥다고 하랴. 또 생각해 보자, 내 아이와 나 사이에도 털장갑처럼 폭신한 이야기 한 가지쯤 있는지를. 기억 속을 헤집어보아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아이에게 따뜻함을 전해 줄 수 있겠는가.
그토록 척박한 가슴을 가진 나를 위해 한 권의 동화책을 읽자. 까마득히 어린 날 읽었던 안데르센(그는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동화, 전래동화, 창작동화를 읽어도 좋고, 요즈음 많이 나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좋겠다. 어쩌면 동화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많은 소중한 것들, 놓쳐버린 시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순진무구함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조금씩 더 쓸쓸해 보이는 플라타너스를 하염없이 내다보다가 동화 생각을 하였다. 조그마한 아이가 되어서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았다. 마음이 한결 따스하다.
이 겨울 마음속에 한 편의 동화를 곱게 그려보면 어떨까.
허창옥(약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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