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무료급식소 대구 자비의 집 통허스님

대구시 중구 반월당 네거리에는 욕쟁이 땡추 스님이 산다. 걸핏하면 욕지거리에 고함을 치고 눈을 부라린다. 거칠고 검은 얼굴에 다부진 몸매, 쳐다보기만 해도 '인상 한번 고약하다'싶은데 상스러운 말까지 쏟아내니 혀를 내두를 판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지독한 욕설에 얼굴을 붉히기는 커녕 반기는 눈치다.

통허(通虛) 스님, 욕쟁이 혹은 땡추로 소문난 그는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이다. 승려번호 01751935, 이쯤이면 상당히 고참승려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듯한 직책이 없다. 혹시 무위도식하느냐고 묻는다면 반월당 보현사 앞 동화사 부설 무료급식소 '자비의 집' 급식 담당 스님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욕쟁이 스님의 속가는 대구다. 11세 때 콜레라를 앓아 전라남도 장성의 백양사로 출가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백양사 승가대학을 졸업했고 30대에 용추사 주지를 거쳐 신안 앞바다 너머 도초섬의 만연사 주지, 강화도 보문사의 원주(주지대리)노릇을 했다. 스님은 스스로 '주지 체질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은 대구경북 불교 조계종 청년회 지도법사. 8년동안 그 일을 해온 덕분에 제자도 많고 팬도 많다.

스님이 일과 중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은 노숙자와 가난한 이웃의 점심을 챙기는 일. 오전 11시 30분이면 그는 유흥업소의 '어깨'처럼 팔짱을 끼고 급식소 입구에 나와 선다. 험상궂은 얼굴로 버티고 선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입하는 이의 몰골을 살피기 위해서다. 날씨가 제법 추운데 옷은 두툼하게 챙겨 입었는지, 양말은 제대로 신었는지, 신발도 없이 온 노인은 없는지, 혹시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아 멍이 든 노숙자는 또 없는지…. 사람들의 입성을 살피느라 그의 눈동자는 쉴 틈이 없다.

그래서 그럴까. 보현사옆 스님의 처소는 창고에 가깝다. 내년 초에 남산동 재개발로 뜯기게 될 그의 처소는 양말, 냄비, 이불, 옷가지들로 그득하다. 후원자들이 내놓은 이 물건들은 장애인 부부의 신혼 살림살이로 쓰이거나 노숙자의 월동 준비품으로 나간다.

대구시내 무료 급식소가 대체로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급식을 하지만 '자비의 집'은 1주일에 6일을 급식한다. 하루 평균 이용자는 300여명. 급식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이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서둘러 급식을 시작하는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침을 굶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저녁도 굶기 일쑤인 만큼 두 그릇을 먹어도 좋고, 세 그릇을 먹어도 좋다.

스님에겐 기쁜 일과 슬픈 일, 마음에 드는 사람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다. '자비의 집'을 찾아와 배를 채우고 돌아서는 이의 만족한 얼굴은 스님을 기쁘게 한다. 춥고 비 내리는 날 신발을 신지 않고 걷는 사람은 스님을 슬프게 한다. 누추한 몰골일지라도 쌀 한 됫박을 '자비의 집'에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은 조금 잘못을 저질러도 마음에 든다. 윤기나는 얼굴에 잘 차려입은 양복쟁이가 빈손으로 찾아와 폼잡으면 웬만큼 잘해도 밉다.

승복이 아닌 평상복에 모자까지 푹 눌러 쓴 외양에 걸핏하면 욕지거리, 스님의 몰골은 영락없이 끈떨어진 '조폭'이다. 그러나 통허 스님은 '자비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동화사와 정부의 후원이 있긴하지만 많은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종일 뛰어다녀야 하고, 그들의 고민도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조언을 좇아 새 인생을 시작한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다.

스님의 상담시간은 급식이 끝난 후인 오후 2시부터. 그의 이웃 상담에는 주역과 주역 선예 공부가 큰 도움이 됐다. 불교신자나 가난한 이웃들만 스님을 찾는 것은 아니다. 신·구약 성경을 오랫동안 공부한 덕에 개신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도 스님을 찾는다. 종교를 넘어 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뜸한 시간에 스님은 밀린 공부를 한다. 오랫동안 열심히 글을 써온 덕분에 다라니 범서에 출중한 승려로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통허 스님은 주변 사람을 통해 이미 취재를 마치고 찾아온 기자에게 "신문에 나가면 땡추짓 못하는 구마, 쓰지 마소" 라며 끝내 거부하다가 "그라마 불쌍한 중생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께 고맙다 카더라고 써주소"한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