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신사년(辛巳年)은 외환위기 이후 드리워진 '불황의 터널'이 얼마나 길고 막막한 것인지를 재확인시켜준 한 해였다.어려운 입시경쟁을 뚫고 학사모를 쓴 젊은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했고, 산업현장에서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직장에 몸담고 있는 근로자들도 임금체불에 시달려야했고 퇴직금 한 푼 못받은 채 회사문을 나서는 근로자들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지난 한 해 대구.경북지역 근로자들과 미취업자들이 겪었던 고통,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사건과 제도적 변화 등을 정리했다.
◆취업난 : 지난 한 해 대다수 대학 졸업예정자들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옛말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수십번 원서를 넣어 모두 퇴짜를 맞은 대학생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고 100번 이상 원서를 썼지만 실패한 학생들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1개의 대규모 기업집단이 대학졸업시즌에 맞춰 수천명씩을 고용하던 공채방식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소규모 수시채용방식에다 경력직 선호까지 겹쳐지면서 '새내기들'이 설 곳은 없었다. 채용정보업체들은 내년 2월 50만명 가까운 대졸자들이 쏟아질 예정이지만 일자리는고작 7만여개에 불과, 40여만명은 갈 곳이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체불임금 : 올 한 해 대구.경북지역 대다수 근로자들이 '체임'의 고통을 경험했다. 대구지방노동청이 올 상반기까지의 체불임금을 집계하자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들어 청산되지 않은 체불임금이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많은 근로자들이 '빈 통장'을 들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대구.경북지역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99곳에서 체임이 해결되지 않고 있고 100인 이하 영세사업장까지 포함하면 수백개의 사업장 근로자들이 '빈 손 근로'에 나서고 있다.
결국 많은 근로자들이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면서 대구.경북의 근로기준 관련 신고사건은 지난해보다 2.8%, 사법처리건도 4.4%나 증가했다.
◆계속된 구조조정 : 외환위기 이후 이미 익숙한 용어로 자리잡은 구조조정의 칼날은 지난 한해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 때문에 실업상태의 근로자들에게 일정기간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 실업급여는 사상 최대의 지급액을 기록했다. 올 해 대구.경북지역에서 실업급여를 타 간 근로자는 모두 3만3천540명으로 790여억원을 받아갔으며 이같은 수치는 지난 해 같은 기간 2만4천625명, 439억여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불어난 것.대구.경북지역에서는 올 한 해 월평균 3천여명이 중도실직을 당해 실업급여를 타 간 것으로 조사됐다.
◆10:90의 사회 : 봉급생활자들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된 한 해 였다. 봉급 이외에도 1천만원 가까운 연말 성과급을 챙기는 대기업 직원들이 있는가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정해진 임금도 모두 받지 못하는 현실이 이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4/4분기 경제전망'에 따르면 지난 1~9월 500인이상 사업체의 평균임금은227만6천원으로 5~9인 사업체의 평균임금 133만5000원의 170.5%를 기록, 작년 같은 기간의 169.0%와 99년 같은기간의 164.0%에 비해 임금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100~299인 사업체 대비 5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수준도 지난 99년 1~9월 127.2%와 작년 같은 기간 127.4%에서 올해는 130.0%로 크게 확대됐다.
◆주5일 근무제 : 근로자들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올 '주5일 근무제' 도입논의가 올 한 해 내내 무르익어 갔다.노사정 합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가 단독입법도 불사할 예정이어서 내년 상반기쯤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될 예정으로 보인다.공공부문 및 대기업이 가장 먼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려야 주5일 근무제 혜택을 입게 될 예정.
때문에 노동단체들은 근로현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전제된 주5일 근무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누구는 '주5일 아빠', 누구는 '주6일 아빠'라는 근로자간 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노동소외계층 :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가 지난 한 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꼽은 것은 '비정규직 문제'였다.전체 근로자의 절반이상이 임시.일용직 등 이른바 비정규직 근로자로 대체되면서 이들이 느끼는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후퇴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상당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기본적인 사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불규칙적 근로에다 저임금을 강요받았고 부당한 퇴직까지 감수해야했다.
실제로 대구지방노동청이 지난 11월 비정규직 고용사업장을 중심으로 법정 최저임금 위반업체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위반 사업장이 4배나 증가했다.
◆모성보호법 : 국회는 지난 7월 출산휴가 90일 연장, 유급육아휴직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모성보호의 사회분담화라는 정책을 현실화했다. 모성보호 관련법안은 지난 달 1일부터 시행, 근로자가 육아휴직하면 정부가 월 20만원씩 주는 육아휴직제도에 의해 이 달 대구.경북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육아휴직급여 수혜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밖에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이 기존 5인이상 사업장에서 1인이상 전사업장으로 확대됐으며, 지난 99년 고평법에 처음 도입된 '간접차별'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 고용상 차별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했다.
◆공무원 노조 : 지난 99년 공무원노조 도입을 위한 과도기적 형태로 설립된 공무원직장협의회들이 올해 들어 공무원노조 도입을정부에 본격적으로 촉구하기 시작했다. 공직협들은 지난 2월 전국단일조직체인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을 만들었으며 전공련에 참여하지 않은 공직협들도 '대한민국공무원노조 준비위원회(대한민국 공노준)'를 구성, 공무원노조 합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구.경북지역에서도 대구의 달구벌공무원직장협의회가 활동범위를 늘려갔고 경북도내에서도 직장협의회의 세불리기가 이어졌다.결국 이같은 움직임 속에 노사정위도 지난 7월말부터 공무원노조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산별노조 : 노사협상과정에서 기존 기업별 노조형태보다 근로자의 교섭력을 크게 강화시킬 산별노조가 속속 출범하면서 노사관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지난 3월 창립대의원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대동공업.한국게이츠.상신브레이크.영남금속.IPC.굿맨손공사 등 6개 지회 1천10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됐다.
대구지방노동청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금속노조 구미지부(4개지회, 3천300여명)와 금속노조 포항지부(8개지회, 1천700여명)가 잇따라 출범했다.노동단체들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교섭권을 갖고 사측과 직접 협상에 나섬으로써 노동계의 교섭권 강화가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복수노조 허용 유예 : 정부는 지난 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제정하면서 2002년 1월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해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한 사업장에 2개이상의 노조가 설립될 수 있도록 복수노조를 전면 허용키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조항의 시행시기가 다가오면서 노동계와 재계가 다시 입장차를 보였고 결국 지난 2월 노사정위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내놓고 최종결정을 5년 뒤로 미뤘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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