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베란다의 봄

색깔이 무척 고와서 지난해 봄에 산 튤립 화분이 차츰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시들어 한참 동안 베란다 한쪽 구석에 밀쳐 두었다.

그런데 겨울의 막바지에 이르러는 어느 새 파릇한 새싹이 보일 듯 말 듯 돋아 나 있었다.

돌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새 생명을 피워 내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 행여 찬 바람에 시달리기라도 할까봐 화분을 다시 거실로 곱게 들여놓았다.

또 며칠이 지나 다시 보니 햇볕을 받지 못해 오히려 덜 자라는 느낌이 들어 화분을 베란다에 다시 옮겨 놓아보았다.

작은 식물 하나라도,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건만,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네 일상은 왜 이리도 건조하고 팍팍하여 집 베란다의 꽃 한송이도 차분하게 바라다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 마음도 따사로운 새 봄의 햇살처럼 새롭게 소생하는 뭇 생명들에게 자비로운 손길로 온 누리 사랑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면….

이제 우수도 지나 경칩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켠다.

거리의 사람들 발걸음에서도 한결 생기가 돈다.

앙상한 몸으로 거친 바람에 스걱대던 겨울 나무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이제 새봄은 그리 머잖아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산들 바람 타고 올라와 저 들과 산으로 들불처럼 찬란한 꽃 불태로 번지겠지.

나의 봄은 내 작은집 베란다의 파릇한 새싹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문득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선율이 내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오는 새봄을 맞으러 가는 새색시마냥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젖혀본다.

따사롭고도 생기 충만한 봄볕이 이 베란다를 너머 저 마을과 동산으로 널리 퍼져가면서 어디에다 어떤 그림을 그리며 누구에게 무슨 노래를 들려주면서 왔다가는지 찬찬히 바라보며 음미하리라.

김애규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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