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바!라이프-대구적십자 봉사회

지하철 참사희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대구시민회관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각종 현수막들이 건물전체를 돌아가며 빼곡히 나붙어 있다.

유족들과 사고수습 관계자, 취재기자들이 하루종일 붐비는 분향소 주변은 각종 사회단체와 기업체에서 나온 자원 봉사대원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 난로불에 몸을 녹여가며 봉사활동을 펴느라 분주하다.

지하철 참사이후 시민회관에 모인 자원 봉사팀은 20여개. 모두가 열심이었지만 합동 분향소 계단입구에 자리잡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대구지사 협의회 소속 부녀회원들도 새벽부터 현장을 지키며 국밥을 만들고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나르느라 눈코 뜰새 없는 활동을 했다.

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원들은 지난 18일 지하철 참사가 터지자 곧바로 중앙로역 참사현장과 분향소 주변에서 구호활동과 희생자 유가족 돕기에 들어갔다.

대구시내 8개 지구협의회 소속 적십자회원들이 하루 70~100명씩 교대로 나와 새벽 5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차가운 바람을 맞아가며 자원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는 30분마다 300명분의 국과 밥을 조리해내는 지원차량이 한대 서 있다.

적십자 봉사대원이 지난달까지 제공한 급식만도 2만1천500명분에 달한다.

이와 함께 담요 850장, 인명구조낭 150매가 전달됐다.

남들은 달콤한 새벽잠에 빠져있거나 가족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때 이들은 아무런 댓가 없는 무료 봉사활동에 매달리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대구지사 협의회 소속 등록 회원수는 2천26명.

대부분 여성회원들이지만 남자회원도 138명 포함돼 있다.

30~50대인 남자 회원들은 숫자가 적다보니 여성회원들의 활동에 묻혀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구난 사고가 날 때마다 구조대와 함께 제일 먼저 달려가는 이들은 평상시에는 독거노인, 장애인, 결식아동 돕기, 양로원 방문, 외국인 무료진료 및 위안잔치 등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을 보살피는데 앞장선다.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2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까지 주부들로 구성된 부녀회원들의 얼굴에서 힘들거나 고생스럽다는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종일 서있어야 하지만 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준다는 보람을 공유하고 있어선지 얼굴마다 웃음이 넘치고 정겨움이 가득한 얼굴 들이다.

적십자 봉사활동에 나선 지 10년째인 오미선(47·대구시 내당동)씨는 "내 몸이 건강할 때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86년 봉사회원에 가입한 노춘식(52·대구시 중리동·적십자봉사회 서구협의회장)씨는 "남을 돕는게 좋아서 가입했는데 자녀들도 이제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저절로 나타나는 등 교육적으로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적십자사 봉사회 대구지사 협의회가 발족된 것은 1947년 중앙본부가 생긴 지 7년뒤인 1954년 5월. 발족 초창기 50명이던 회원수는 지금은 2천여명을 넘어섰다.

협의회 사무실은 대구시 중구 달성동 145의2(053-573-2460) 적십자 혈액원 바로 옆 건물에 있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매월 8일 2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월례회를 가지며 각종 봉사활동 사업을 협의한다.

올 2월부터 회원들은 대구 달서와 서구지역 재가 장애인과 독거노인 각 50세대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 해주고 있으며 수성구 회원들도 용지 임대아파트에 살고있는 장애인, 소년소년가장, 독거노인들에게 매일 도시락반찬을 제공해주고 있다.

날씨가 풀리는 이 달부터 동절기 동안(12월~2월) 중단했던 노숙자와 독거노인, 실직자들을 상대로한 무료급식도 실시할 계획이다.

회원들은 평소에 재해구호 교육을 받고 1년에 한번씩 모의 훈련을 하는 등 재해구호 이론과 실전경험이 풍부한 덕택에 각종 재난 사고 현장에서 다른 기관단체들보다 훨씬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국채보상공원과 경삼감영공원 등을 매일 청소하고 1년에 한차례씩 장애인 300명을 데리고 경주, 해운대, 우방랜드 등으로 소풍을 다녀오는 등 일년 내내 빠듯한 봉사일정 탓에 일주일에 2, 3일씩은 봉사활동에 시간을 쪼개야 한다.

대구지사 회원들의 1년중 가장 큰 행사는 매년 10월이면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해오고 있는 경로 체육대회. 24회째를 맞고 있는 이 대회에는 대구시내 노인 8천여명이 참가한다.

회원들은 일년동안 고단한 봉사활동으로 쌓인 피로를 매년 11월 개최하는 봉사원 대회에서 모두 풀어버린다.

회원들의 단합대회 성격인 봉사원 대회에는 1천여명의 회원들이 모이며 이날 하루만은 체육행사와 한마음잔치, 우수회원 표창 수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노고를 칭찬하고 회원들간 화합과 친목을 돈독히 한다.

노춘식 회원은 "맨손으로 그릇과 식판을 1천여개씩 씻어야 할 때도 있지만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에 봉사활동에 따른 모든 수고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린다"고 말했다.

22년째 대구지사에 근무해온 서정숙(53) 사회 봉사과장은 "전국 14개 시·도 지사 가운데 대구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적십자 봉사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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