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음주 문화

옛날 옛적에 어느 도깨비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개 아래를 보고 있자니 점잖은 선비가 시를 읊으며 올라와 얼른 '어떻게' 해버렸다.

곧 한 기생이 춤추고 노래하며 오길래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이어 한 망나니가 허공에 욕설을 퍼부으며 비틀비틀 올라왔다.

배가 부른데다 그 형색이 마땅찮아 주저하다가 굶주리던 지난날이 떠올라 저축하는 셈치고 또 처리했다.

그 뒤 그들이 묻힌 곳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 맺힌 열매가 떨어져 썩으면서 이상한 물이 생겼다.

그 물이 바로 술이라는 '도깨비와 술' 이야기가 전한다.

▲누가 지어냈겠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측은지심이 생겨 눈길이 부드러워지고, 선비의 혼이 나타나 시인묵객이 된다.

취흥이 도도해지면 기생의 혼이 씌워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거린다.

그러나 선비.기생의 단계를 넘어서면 술잔이 엎어지고 큰소리가 오가며 심할 때는 코피가 터지기도 하는 망나니 상태가 되게 마련이다.

▲술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가르치지만 망나니 단계의 폐해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강조된 이야기인 셈이다.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겐 사려분별을 기대치 말라'고 말한 바 있으나, 지나치면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역기능을 부른다.

더구나 서양인 중엔 4%, 동양인은 25% 정도가 알코올 분해 효소를 생성하는 유전자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도 이런 사람들에겐 술이 독(毒)이자 고통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남자의 3분의 2가 술잔을 들면 건강을 해칠 정도로 과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음주율은 50.6%이며, 술을 마시는 사람 중 건강에 좋지 않을 정도로 한 번에 많은 양(남자 소주 5잔, 여자 3잔)을 마시는 남자는 63.4%, 여자는 57.8%나 된다.

특히 30, 40대 남자는 70%가 과음하며,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술을 마시는 성인 중 무려 20.9%가 '알코올 의존'(알코올 중독 전단계) 상태라는 평가다.

▲최근 몇 해 동안 우리의 연간 음주량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특히 소주.위스키 등 증류주 소비는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라 한다.

음주 문화도 악명이 높다.

주량과 주종을 '통일'해 놓고 강권하는 폭력적 술판, 저녁 회식의 71%가 2~3차까지 가는 음주벽은 사망사고를 내는 '술 고문'이 되기도 했다.

시인 조지훈은 음주론에서 술은 모름지기 세상을 배우는 자세로 마시는 학주(學酒)에 그 진체가 있다고 했다.

옛날 스파르타인들이 노예들을 만취시킨 뒤 그 모습에서 교훈을 얻었다지만, 술을 즐기더라도 학주 정도는 어떨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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