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대구 사람

며칠전 서울지역 한 신문에 대구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국정을 논하는 분들이 모여 대구 걱정을 하면서 이번 지하철 참사로 인해 표출된 대구 시민의 분노와 좌절감은 대통령 선거 후의 허탈감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대구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고매하신 분들의 말씀이라 그 속에 진실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대구토종, 5천년전 신석기 중기부터 집단 거주의 유물과 흔적을 가지고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같은 대구토종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먼저 형언할 수 없는 참사로 인해 희생이 된 고인들의 가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거듭 드립니다.

우리 대구사람들의 우둔함이 200명이 넘을 지도 모르는 귀한 생명을 희생시켰습니다.

그중에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수십명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생명이 고귀하지 않으며 또 생명의 고귀함에 앞뒤가 있겠습니까마는 대학에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학생 제자들의 죽음이 더 억울하고 아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지녔던 미래에 대한 가능성 때문일 것입니다.

숨진 그들 중에 어떤 제자는 우리 모두의 깊고 순수한 흉금을 울리고, 맹수의 야성까지 교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예술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그들중에 어떤 제자는 인간생명의 신비에 대한 인간 무지의 경계선을 축소시킬 수 있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 그들중에 어떤 제자는 수 천년만에 비로소 다시 하나님이 평화의 도구로 쓰실 수 있는 위대한 예언적 선구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은 이제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생명을 잃은 만큼 우리 대구사람들은 비참해져 있고, 아름다운 꿈을 잃은 만큼 쇠약해져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78%나 되는 대구사람들이 원한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기에 허전한 감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심리적 공황상태' -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 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대구사람들이 때로는 우매하고 고집스러우며, 때로 무지하고 고약하며 부분적으로는 정이 떨어지는 못난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무기력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구사람들의 본질은 달리 있습니다.

그것은 간혹 우리 대구사람들을 엄습해 오는 무자비한 생각 즉 '한반도 서울민국 속의 대구사람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다시 일어서는 의지입니다.

제3자가 혹은 우월감을 가지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이야기하는 '심리적 공황상태' 자체를 공황화시키는 정열적인 의지가 대구사람들의 본질 속에 항존하고 있습니다.

견디지 못할 고통과 핍박도 인내와 용기로 극복하고 일어서서 더 훌륭한 국가사회를 건설하려는 힘이 대구사람의 심장과 척추에서 솟아납니다.

그 힘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통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대구 3·1운동을 일으켰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으며, 우리의 혈맹국 미국군인들과 함께 6·25 북한 침략때 대구와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우리에게 '심리적 공황상태'는 없습니다.

우리 대구사람들은 이번 지하철 비극을 우리의 헌신적인 힘으로 극복하고 대구사람들의 참 모습을 다시 보일 것입니다.

우리 대구사람들은 피눈물나는 고통을 머리와 마음에 삭이면서 창의적인 도전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학문연마와 생명의 존엄성 앙양, 삶의 질 향상과 진리탐구를 더 심화시킬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의 영혼의 구원을 갈망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우리 대구가 갖고 있는 능력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 참사에 깊은 애도와 400억원이 넘는 성금을 보내주신 전국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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