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일구이언 시대

요즘 우리는 일구이언(一口二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적인 토론문화가 번지고 있는 것은 분명 이 사회가 건강하고 잘돼 나가는 조짐은 아니다.

더구나 일구이언의 의미가 두가지 말(二言)중 어느 한가지 말은 마음에 없이 꾸며댄 말이란 좋지않은 의미임에도 사람들은 듣는 상대나 장소와 상황에 따라 겉다르고 속다른 두가지 말을 둘러대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크게 열린 정보화시대, 토론과 참여의 기치를 건 나라에서 일구이언의 분위기가 생겨난다는 것은 분명 의외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소위 코드(Code)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예를들어 교장선생님들은 그들끼리만 모인 자리가 아니면 전교조에 대한 비판적인 입은 열지 않는다고 한다.

코드가 같은 교장들만의 자리에서는 전교조의 전쟁퀴즈 같은 부정적인 부분을 걱정하다가도 다른자리에서는 가급적 다툼의 씨가 될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바른말 하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로 인해 시달려야 할 시비보다는 듣기좋은 일구이언이 차라리 속편하다는 생각에서다.

지식인들은 지식인대로 네티즌 세계에 뛰어들어가 논쟁의 시비를 벌이려 들지 않는다.

한마디 했다가 안티세력의 집중포화를 맞고 초주검이 되다시피하는 동료지식인의 참담한 수모를 보면서 평소 같은 코드끼리의 동료지식인들과 나누던 말과는 다른 일구이언이나 침묵을 선택 하는 것이다.

일구이언은 비겁함이라기보다 불가피한 도피다.

건전한 토론문화가 없는 살벌한 벌떼 여론문화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보호색 같은 것이기도 하다.

거친 시비로부터의 도피와 자기보호를 위한 일구이언은 지식인 사회에서만 번지는 것이 아니다.

3040세대와 5060세대간에도 일구이언의 '닫힌 토론'의 장벽이 생겨나고 있다.

노란풍선의 무리속에서는 그들과 같은 코드의 노란풍선 무리에 맞는 목소리를 내야만 하고 빨간머리띠를 맨 집단속에서는 그들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구이언의 보호색을 지녀야 무사하다고 생각한다.

관료사회에도 코드가 갈라진 그룹끼리 서로 다른 생각을 감추고 살아남기 위한 두말(二言)을 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언론에 글한줄 실었다가는 무슨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투고를 꺼리는 교수나 문화인들에게도 일구이언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지역지도자도 모임과 참석자 성격에 따라 다른 말을 하거나 해야한다.

일구이언보다 더 소극적인 소위 '침묵하는 다수'들도 시비와 마찰이 싫기 때문에 일단 침묵한다.

촛불을 들고 밤광장에 나가지 않고 경찰 방패를 부수며 대거리를 않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생각과 의견과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다수의 주장과 의견이 있음에도 침묵이나 딴말로 바뀌어 나타남으로써 엉뚱한 여론이 진짜 여론인양 오도되는 것이다.

병적 요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이중적인 의사표시의 비뚤어진 토론문화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지금 당장 인터넷속으로 들어가 보면 해답이 보인다.

토론마당이나 게시판이란 이름의 토론장에 정작 제대로된 참여니 토론의 여유로움은 거의 없다.

치밀하다고 할까, 조직적이라고 할까. 섬뜩할 만큼 훈련된 공격적 수사들이 칼날처럼 난무한다.

그런 살벌한 전쟁터에 토론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건 바보다 . 침묵하는 다수가 생겨 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리 일구이언이 더 도덕적이 아니냐 싶을 정도로 언어폭력과 인격파괴가 도사리고 있는 인터넷 인민재판에 왜 나가느냐는 공포와 도피가 있는한 그 어떤 참여나 토론도 활성화 될 수 없다.

끼리끼리 같은 코드를 가진 그룹이 다른 코드를 가진 그룹을 공격하는 방법이나 '토론'하면서 짐짓 토론문화니 열린 정보화 시대니 할 뿐이다.

보수와 진보, 3040세대와 5060세대, 노동계와 재벌, 모든 사회계층간에 서로서로 일구이언의 위장과 반목, 자기방어의 몸사림으로 마주하는한 국민통합은 없다.

여론조사 전화에도 행여 뭣할새라 속내와 다르게 응답한다는 일구이언 시대에 필요한 것은 건전한 충고와 의견은 존중하되 토론의 기본양식이 결여된 일부 인터넷의 벌떼공격에는 끄떡없이 한목소리를 내는 지성의 용기다.

지식인들, 침묵하는 다수, 건전서민 중산층은 옳은 목소리를 막는 일부 조폭적 토론문화가 더이상 강해지기 전에 이제 일구이언이 아닌 일구일언(一口一言)의 당당함을 보여 줘야한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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